오피니언

[토요산책]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이순원<소설가>

내 나이 열여섯살 때 어느 책에선가 ‘계절이 바뀌는 길목’이라는 멋진 말 하나를 배웠다. 그때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뒤돌아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어떤 명사의 수상록이거나 수필집이었던 것 같다. 그 책을 읽어나가던 중 본문 안에서 저 멋진 말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 책 제일 앞에 실려 있는 ‘저자의 말’에서 눈에 스치듯 그것을 본 듯하다. 아마 내가 읽던 책이 아니라 아버지가 읽던 책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 저자의 말 맨 끝에 이 책을 내는 시기가 바로 ‘계절이 바뀌는 길목’이라는 것이었다. 그 멋진 말을 배운 다음 나는 꽤나 틈틈이 그걸 써먹었던 것 같다. 그 무렵 군에 가 있는 형에게 쓰는 안부편지의 제일 끝에도 날짜 대신 ‘계절이 바뀌는 길목’을 쓰고 이제 계절이 완전히 바뀐 한겨울에 숙제처럼 써내야 하는 위문편지 뒤에도 어김없이 그 말을 쓰고는 했다. 실제로 ‘환절기’라는 말과 비교해본다 하더라도 그 말은 이따금 한번씩 쓸 때마다 그 안에 시적인 서정이 그대로 뚝뚝 묻어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말을 처음 배운 소년의 나이는 열여섯이었고 그것을 가장 왕성하게 쓰던 시절은 고등학교 때였다. 그리고 한동안 그 말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무수히 계절이 바뀌며 시간이 가고 나이를 먹으면서는 정작 그렇게 계절이 바뀌는 길목들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점차 어른이 되면서 내 삶의 시간도 잊고 계절도 잊고 자연도 잊고 살았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돌아보니 나 역시도 어느 책에 쓴 ‘작가의 말’ 끝에 ‘계절이 바뀌는 길목’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으면서도 그때 그런 계절의 길목을 제대로 느끼고 살았는지 잘 모르겠는 것이다. 그러다 요즘 다시 그 말을 처음 배웠던 어린 시절처럼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서서 나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을 가만히 생각해본다. 지금이 바로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계절의 길목인 것이다. 달로 치면 8월에서 9월로 막 넘어온 시기인데 언제부턴가 피부로 느끼는 날씨와 달력의 숫자로만 계절을 보낸다. 그러나 달력은 날짜와 시간의 나침반이지 계절의 나침반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개학을 막 한 때이고 어른들에게는 이제 막 여름을 보내고 나자 저만치 또 한번 큰돈 들어갈 명절로 추석을 앞두고 있는 시절이다. 명절에서조차 계절보다 먼저 생활과 집안 경제사정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말이야 누구나 자연을 느껴보자고 하지만 매일 오가는 길 같고 매일 앉아 있는 책상의 위치가 같으며 매일 바라보는 하늘 역시 그것이 높아지는지 낮아지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이야말로 바로 계절이 바뀌는 그 길목이 아닌가. 어린 시절 농촌에서 매일 들판을 보고 기억으로 되돌려 볼 때, 가을 과실들도 바로 요즘 철에 하루하루 자기 살을 찌운다. 간난아이의 주먹보다 작은 감이 어른 주먹만하게 불뚝 자라는 시기도 요즘이며, 늦봄ㆍ초여름ㆍ중여름 그렇게 일년에도 세 차례 꽃을 피워 가지가 찢어지도록 열매를 맺은 대추나무가 제 자식들의 과육을 키우는 것도 바로 이 시기이며, 이제 보름쯤 후면 시장에 나올 햇밤들도 다른 때가 아니라 바로 요즘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제 과육에 몸을 불린다.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연의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고 배우며 감탄하는 일들을 단지 어느 결에 우리가 잊고 있는 것뿐이다. 며칠 전 고향에 송이가 났다는 말을 전화로 전해들었을 때도 그랬다. ‘그렇게 빨리?’ 하고 되물었으나 그것 역시 다른 해보다 빠른 것이 아니라 매년 그렇게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길목에 얼굴을 내밀던 진귀한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다만 내가 그걸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말과 글로만 계절이 바뀌는 길목을 찾고 느끼며 살았지 몸과 마음으로는 그 길목을 잊거나 건너뛰며 살았던 것은 아닌지. 이 주말에 우리 모두 계절이 바뀌는 그 길목에 한번 나서보자고 드리는 말씀이다. 쳐다보면 그 길목의 하늘도 우리 어린 시절 들판에서 보았던 그대로 저렇게 높고 푸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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