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도약! 21세기 자동차강국] 4. 경쟁력 향상은 부품산업부터

"도약이냐 퇴출이냐" 생존 기로"싸구려 중국산 자동차 부품은 밀물처럼 들어오지, 고급 제품은 다국적 업체들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 완성차 업체들은 하루빨리 대형화ㆍ전문화하라고 재촉하지, 그야말로 죽을 맛입니다."(국내 자동차 협력업체의 한 사장) 우리 부품업체들이 국내외 산업환경 변화에 따라 '도약이냐 퇴출이냐'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 받고 있다. 지난 10월 현대자동차가 제휴 관계사인 다임러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자동차 등과 매년 130억 달러의 규모의 부품을 공동 구매키로 한 게 대표적인 예다. 이에 따라 국내 부품업체는 현대ㆍ기아차가 주는 설계 도면을 받아 가공만 하면 되는 '편안한 장사'에서 벗어나 '해외 업체와의 생존경쟁'이라는 허허벌판으로 내몰리게 됐다. ◆생존 시험대 오른 부품업체 국내 부품업체들은 대부분 해외 업체에 비해 영세하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생산 규모는 세계 5위지만, 세계 100대 부품 메이커에 끼인 국내 업체는 전무한 실정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차 부품업체의 수는 현대차 366개, 기아차 448개, 대우차 478개 등 1,002개로 나타났다. 이는 4~5년전에 비해 20~30% 가량 줄어든 것이지만 일본 도요타의 228개, 닛산 116개에 비해 2배 가량 많은 것이다. 더욱이 1개 완성차업체와 거래하는 비중은 58.6%에 달했다. 그만큼 모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뜻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완성차 업체의 ▲공개경쟁 입찰제 도입 ▲해외 진출 선언에 따른 글로벌 소싱 ▲모듈화 가속화 등은 부품업체에 큰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협력업체 임원은 "100% 공개 입찰제가 도입된 이후 해마다 10% 정도의 원가인하 압력이 들오고 있는 데다 외국 대형 업체도 견적을 제출하고 있어 곤혹스럽다"고 털어놓았다. 또 김동진 현대차 사장은 "미국ㆍ중국 등 해외 공장의 부품은 대부분 현지에서 조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단지 국내 업체라는 이유로 더 이상 배려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외 동반 진출하는 부품 업체 수는 20여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중국산 부품 수입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올 10월말까지 중국산 부품 수입액은 2,17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나 증가했다. ◆글로벌 업체로 도약 기회 현대차 협력업체의 한 사장은 "미국ㆍ일본 등의 완성차 업체들은 국내에 비해 납품가를 10~20% 가량 올려도 물량을 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품질 대비 가격이 미국ㆍ일본에 비해 50~70%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우차를 인수한 GM의 경우 한국에서 부품 구매 규모를 지난해 1억 달러 수준에서 연 6억 달러 이상으로 늘릴 방침이다. 지난해 말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 기술 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우리 부품업체들의 신제품 개발과 설계 기술은 각각 52.3, 62.5에 그쳤지만 가공 기술만은 80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소싱 등 전세계적인 트렌드를 잘만 활용하면 '낮은 지명도'라는 약점을 벗고 선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얘기다. 실제로 현대차의 부품 공동구매 제휴 과정에서 현대모비스 등 10여개의 업체가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에 수천만 달러 규모의 부품을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또 외환위기 이후 해외 부품 업체의 국내 진출 가속화도 기술 및 거래 투명성 향상, 수출 증대 등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력이 취약한 영세 업체는 치명타를 입겠지만 대형화ㆍ전문화에 성공한 업체는 델파이ㆍ비스티온 등에 버금가는 거대 부품사로 성장할 수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정부ㆍ완성차업계 협력체제 시급 최근 국내 160여개 업체는 51억원의 기금을 출연, 열악한 부품업체를 중심으로 기술 지도, 고가장비 공동 운영 등에 나설 방침이다. 또 현대차 그룹도 현재 400여개에 달하는 부품 업체 수를 3~4년내 300여개로 줄이기로 하는 등 통합ㆍ대형화에 박차를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업계의 자율적인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 이에 대해 업계는 부품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디젤엔진ㆍ연료전지ㆍ첨단전자기술 등 유망핵심 부품 개발에 대해서는 정부가 세제 감면, 공동연구 등을 통해 지원하고, 범용 제품은 완성차 업체가 기술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영섭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 이사장은 "완성차의 국제 경쟁력은 부품 업계의 품질 수준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다"며 "세계 자동차 4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완성차 업체는 물론 정부와 총체적인 협력 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국내 부품 산업도 기술 취약성만 개선한다면 완성차보다 수출 증가율을 더 높일 수 있다"며 "전문화ㆍ대형화, 지역 대학과 산학연 협력체제 구축, 부품조달체계의 중층화 등을 통해 내수가 아닌 수출로 눈을 돌려야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형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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