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4월 7일] 미국의 위안화 딜레마

역대 미국 행정부는 출범 초기에 곧잘 중국을 흔들어봤다.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중국의 급부상에 미국은 중국의 실력을 가늠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인권을 지렛대 삼아 중국을 떠봤고 부시 행정부는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했다. 미 행정부는 그러나 임기 중반에 들면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를 인정하고 공존을 모색해왔다. 미국의 대중 갈지자(之) 행보는 집권 초기의 정치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행정부가 출범하면 의욕이 넘치기 마련이며 외교 정책의 기틀도 채 다지기 전이다. 국제 관계의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명분과 이상이 더 앞서는 시기다. 오바마 행정부 역시 과거의 패턴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중국 방문 직후부터 양국 관계는 급속히 틀어졌다. 미국은 지금까지 대중 공세에서 번번히 판정승을 거뒀다. 미국은 대만에 무기를 팔아 중국 안보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달라이 라마를 백악관에서 면담했다. 한편으로는 수출증진을 경제 위기의 돌파구로 삼겠다며 위안화 절상을 끝없이 요구했다. 미국은 대만과 티베트라는 지렛대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중국을 다뤄왔다. 심상치 않던 미ㆍ중 갈등은 큰 고비를 넘긴 듯 보인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다음주 워싱턴 핵 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하기로 했고 이에 미 재무부는 환율보고서 의회제출 연기를 결정했다. 해빙 모드는 수전 라이스 미 유엔대표부 대사가 중국이 이란 핵 문제에 전향적 자세를 보인다고 밝힌 이후 하루 차이로 급진전됐다. 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는 대신 중국은 이란 핵 제재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빅딜 설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미국은 위안화 해법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환율보고서 발표를 연기하는 어정쩡한 미봉책은 딜레마에 빠진 대중 외교의 단면을 보여준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자니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고 반대로 면죄부를 주려니 오는 11월 중간 선거가 부담인 것이다. 주도권은 이제 중국이 쥐고 있다. 중국이 위안화를 눈곱만큼 절상해 오바마 행정부의 체면을 살려줄 것이냐는 중국의 선택이다. 유엔의 대이란 제재는 중국의 협력 없이는 어렵다. 이란 핵 문제는 중국이 미국을 움직이게 하는 지렛대가 된다. 미국은 패를 거의 다 드러냈지만 중국은 이제 막 패를 들었을 뿐이다. 중국이 미 국채를 조금씩 줄여온 모습에서는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벗어나 세계에 우뚝 선다는 '화평굴기(和平掘起)'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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