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Culture & Life]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임총장

'중창' 정신으로 한예종 리모델링… 제2 부흥기 열어야죠<br>통도사·루브르 등 건축 명작도 단순 보존 넘어 수차례 변화 거듭<br>남길 것·바꿔야 할 것 계획 세워 예술학교로서 최고 작품 만들 것<br>공학이자 인문학인 건축 통해 다양성 포용할 수 있는 삶 배워



"건축 역사상 명작으로 기록되는 작품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단순한 보존을 넘어 여러 차례 새로운 창조로 거듭난, 이른바 중창(重創ㆍre-new constructionㆍ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의 역사를 거쳤다는 점입니다. 개교 20주년을 넘긴 우리 학교도 중창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난 9월4일 공식 취임한 김봉렬(55ㆍ사진) 제7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자신이 취임 일성으로 내건 '중창의 정신'을 한예종 변화를 일궈낼 엔진으로 활용하겠다는 각오다. 건축사 학자답게 인문학적 접근과 과학적 사고를 접목한 그의 한예종 리모델링 전략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벌써부터 관심이 뜨겁다.


■ 우연은 필연으로 귀결되다

김 총장이 건축을 전공하게 된 것은 우연의 과정을 거쳤지만 결과론적으로는 필연이다. 5형제 중 막내인 그는 2세 때인 1960년 고향인 전남 순천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어수선한 시국 탓에 부친은 정치가로의 뜻을 접고 생계를 위한 사업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릴 적에 내성적이었던 그는 방바닥에 백지를 펴놓고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설계하는 일을 즐겼다. "형제들이 많았지만 서로들 성격이 내성적이라 말이 없었어요. 형들이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할 때 저는 종이 위에다 집이나 기차를 그리고 그 내부를 상상해서 여러 구조를 채워넣는 것을 즐겼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설계의 기초를 다섯 살짜리 꼬마 남자아이가 시작했던 셈이지요."

역사나 사회ㆍ철학 등 인문학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김 총장은 문과로 진학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이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 있었던 만큼 과학기술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남자라면 당연히 이과에 진학해서 기술을 익히거나 의사가 돼야 한다는 게 대다수 기성세대의 생각이었다.

"당시에는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를 하면 학력고사 점수를 20점 깎는 제도가 있었어요. 이런 불이익도 감수하고 사학과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담임 선생님은 물론 부모님까지 강력하게 반대하셔서 결국 서울대 공대에 들어가게 됐지요. 물론 부모님은 의대 진학을 바라셨지만 반발심 때문인지 의대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그러나 우연은 필연이라고 했던가. 우연히 진학한 공대에서 건축공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면서 건축학도로서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 건축을 통해 삶을 만나다

건축이란 학문은 묘하게도 공학과 인문학, 예술의 경계선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김 총장은 공학자를 만나면 자신이 인문학자라며 역사나 철학을 논하고 인문학자를 만나면 예술로 도망 와서 예술적 상상력을 강조한다고 한다. 그리고 예술가들을 만나면 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예술적 소양이 부족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그는 "건축이라는 게 경계선에 놓여 있어서 어느 하나 제대로 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러 장르를 포괄하는 넓은 포용력을 자랑한다"고 말한다. 김 총장이 대학 생활을 하던 1970년대 말~1980년대 초반은 정치적ㆍ사회적으로 격랑의 시대였고 전공에 충실히 공부한 것 자체가 죄악시되던 시절이었다. 김 총장은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에 대해 생각은 많았지만 격랑에 휩싸이는 것 또한 장기적으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더욱 건축사를 깊이 파고들었다.

그가 입대를 앞둔 시점에 '육개장'으로 불리는 6개월짜리 석사장교가 신설됐다. 처음에는 과학기술을 장려한다는 취지에서 서울대 공과대에 한정해서 운영됐지만 나중에는 공과 대학원 전체로 확대했다가 몇 년 후 없어졌다고 한다. 그가 동기들보다 군 생활과 대학원 학위 취득 모두 빨리 하다 보니 만 26세에 울산대 전임교수 타이틀을 달게 됐다.

하지만 외모가 다소 노숙해 보이는 탓에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한 번은 김 총장이 가르치는 학생이 찾아오더니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던 것. 학생 나이가 김 총장보다 두 살이나 많아 사양하고 돌려보낸 일화는 지금도 종종 회자된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게 재미있었는데 명쾌하게 정리해서 가르치는 능력은 나름대로 타고난 것 같습니다. 울산대에서 처음 교편을 잡을 때부터 한예종으로 옮겨와 지금까지 후학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일은 천직으로 알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한예종의 변화를 예고하다

김 총장은 '중창(重創)의 정신'을 통해 한예종을 변화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건축 역사를 공부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중창'입니다. 요즘은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이라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중창의 기본정신을 갖고 있어야 제대로 된 명품 건축이 탄생합니다. 로마의 판테온신전이나 파리의 루브르 궁전처럼 역사상 명작들은 위대한 이상으로 창건됐지만 단순한 보존이 아닌 여러 차례 새로운 창조를 거듭했지요. 이른바 중창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통도사나 종묘도 중창을 통해 오늘날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습니다. 설립 21년을 맞이한 한예종 역시 남겨야 할 것과 바꾸고 늘려야 할 것을 정확히 판단하고 계획해야 할 시점입니다."

서울대 건축학과에서 학사ㆍ석사ㆍ박사학위를 받은 김 총장은 1997년부터 한예종 미술원 건축과 교수로 임용, 이후 교학처장과 기획처장을 역임했다. 16년 동안 한예종의 살림살이와 행정을 도맡아 해온 만큼 한예종이 처한 현실과 개선해야 할 점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가 한예종 총장으로 선임되자 학교 관계자는 물론 예술계의 기대가 컸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한예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건축 과정에 비유해 제시했다. "건축이 100% 백지 위에서 탄생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건축물이 들어서는 땅의 물리적 한계, 투입돼야 할 자본의 한계, 건축을 책임지는 인간의 기술적 한계 등 제반 여건 속에서 최적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게 바로 건축가가 할 일입니다. 교육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교육 또한 이상만으로는 안 되는 일인 만큼 물적ㆍ인적 자산과 한계를 잘 파악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게 교육기관의 최고경영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He is…



▲1958년 전남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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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198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 공학석사

▲198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 공학박사

▲1985~ 1997년 울산대 건축학과 교수

▲199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

▲2003년~ 2009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2012년~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2013년 9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업그레이드 한예종 프로젝트' 추진
캠퍼스 증·개축하고 입시제도 차별화 교수 정원도 대거 확충




김봉렬 총장은 지난달 30일로 개교 21주년을 맞이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위기이자 기회가 찾아왔다며 새로운 변화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업그레이드 한예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우선 현재 서울 석관동과 서초동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는 캠퍼스 부지 문제 해결이 첫 번째다. 캠퍼스 부지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시한부로 사용하고 있는 석관동 미술원과 전통예술원 교사, 또 다른 하나는 수용력이 한계에 이른 서초동 캠퍼스다. 특히 석관동 본교 건물에서 의릉(경종의 능)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운영되고 있는 미술원과 전통예술원이 들어설 교사를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다. 현재로서는 통합캠퍼스 건립이 어려운 만큼 실현 가능한 방안을 단기ㆍ중기ㆍ장기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단기적으로는 서초동 교사 캠퍼스 증개축으로 음악원과 무용원의 수업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계획이다. 아울러 미술원과 전통예술원 교사 개보수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중기적으로는 현재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따른 의릉복원사업의 본격화에 맞춰 석관동 미술원과 전통예술원의 대체 교사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석관동과 서초동으로 이원화돼 있는 6개원을 한곳으로 모으는 통합캠퍼스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

예술학교의 근간은 사람인 만큼 교수의 정원을 늘리는 한편 잠재력이 큰 학생을 유치하는 데도 역량을 쏟을 계획이다. 설립된 지 21년이나 돼 개교 당시 임용된 40대 교수가 대거 은퇴해야 할 시점이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세대 교체 시점에서 전 세대의 과업을 잘 이어받고 새로운 세대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게 제 사명입니다."

그는 "교수 대 학생 비율이 현재 1대32인데, 최소 1대25는 돼야 적정 수준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며 "다양한 방법으로 임용 시스템을 개발해 잠재력이 풍부한 세계적 예술가를 영입하겠다"고 밝혔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 클라라강 뿐 아니라 뮤지컬계 흥행감독 장유정 연출까지 한예종은 클래식ㆍ무용ㆍ연극ㆍ영화 등 문화예술계 다방면에서 인재를 배출해왔다. 김 총장은 잠재력 높은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예술학교만의 차별화된 입시제도를 새로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그는 "이미 재능을 인정 받은 학생을 보석에 비유한다면 우리가 찾는 인재는 원석과도 같다"며 "원석을 찾아내 갈고닦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가는 게 바로 예술학교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전공심화 교육과정과 융ㆍ복합 교육과정의 병행 운영, 전문사 과정 내실화, 공공 및 민간 재원 확보 등을 추진하면서 이제 성년이 된 한예종이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는다는 각오다.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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