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양극화의 실태와 정책과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중간층은 지난 96년 55.5%에서 2006년 43.7%로 급격하게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동안 빈곤층은 11.2%에서 20.1%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류방식에 따라 평균소득의 70~150%를 중간층으로 보았으므로 이는 사회통념상의 중산층에 해당한다.
평균소득의 50~70%인 중하층도 같은 기간 동안 13.2%에서 11%로 감소했고 평균소득 150% 이상인 상류층도 20.1%에서 25.3%로 늘어난 것을 보면 양극화는 더욱 극심해졌다. 특기할 것은 단순히 빈곤이 심화되었을 뿐 아니라 소득분배 상태도 악화됐다는 사실이다. 같은 기간 동안 중간층의 소득점유율이 51.6%에서 40.7%로 줄어든 반면 상류층은 37.9%에서 48.8%로 늘었다. 빈곤층으로 전락한 가구주의 종사업종으로 제조업보다 건설업과 부동산임대업 등이 많았다는 것도 흥미롭다.
외환위기 이후 소득과 소비 등에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 보편화하고 있어 괜찮은 일자리가 늘기는커녕 도리어 줄어드는 대신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일자리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중산층이 줄어든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어닥친 빈곤층의 증가라는 변화는 개인도 사회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하위 10% 최저소득층 소비지출 행태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저소득층이 훨씬 더 빚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만성적인 적자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갖게 한다.
우리나라 도시가구 중 최저소득층의 평균 소비성향 즉 가처분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146%였다. 다시 말해 매월 버는 돈에 더해 절반가량 빚을 내면서 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스스로 중산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훨씬 더 늘어나고 있다. 과거 70년대에 객관적인 기준에 미달하면서도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더욱이 10년 뒤에도 현재의 중산층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낙관하는 비율 역시 60%에 불과했다. 중산층으로 여기는 기준은 한층 높아졌고 미래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임금소득의 양극화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산소득의 격차라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 이후 천정부지로 치솟은 주택가격은 대부분의 자산을 부동산에 묻어두는 우리의 현실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대물림하기 쉬운 구조로 바꿔나가고 있다. 중산층의 몰락을 고착화시키고 있는 게 다름 아닌 부동산 양극화인 셈이다.
더욱이 중산층을 괴롭히는 또 하나가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중산층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 4년 동안 꾸준히 복지지출을 늘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빈곤층 확대 현상을 막지 못한 것은 이처럼 계층상승을 하려면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 드는 구조가 정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중산층이 사회통합을 중시하고 과거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입장을 취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최근 과거 지향적인 사회갈등이 유난히 불거지고 사회적 이슈마다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중산층의 축소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이제는 중산층을 다시 살려나가는 국가적 전략이 절실한데 이미 해답은 잘 알려져 있다. 30만개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장담해놓고도 26만개밖에 못 만든다든가 17만가구의 임대주택을 짓겠다고 약속하고 11만가구밖에 짓지 못한다면 빈곤층의 확대는 막을 수 없다. 늘어나기만 하는 사교육비를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할 획기적인 방안 등이 필요한 것도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