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선심성 예산 못막으면 '2014년 균형재정' 물건너간다

[구멍 난 나라 곳간] <BR>고령화·中企 성장세 둔화 등 세수악화 요인 줄줄이 불거져<BR>환율등 돌발변수까지 터지면 재정운용에 큰 타격 입을수도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영합 정치)식 정책에 휘말리면 정부가 내년 재정적자 목표치를 (국내총생산 대비) 1.1%로 낮추겠다는 목표도 달성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본부장) 최근 정부 관료들 사이에 재정건전성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거시경제지표상으로는 금융위기의 큰 파고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면 국가채무 규모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순재정수지(관리대상수지)가 목표치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2.0%를 밑돌 것이라며 오는 2013~2014년 균형재정 달성이 어렵지 않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대선ㆍ총선 등을 겨냥한 정치권의 선심성 예산 요구에 나라 재정이 흔들릴 경우 목표시한 내에 균형재정 달성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가채무 규모는 지난 2009년 359조6,000억원에서 올해는 435조5,000억원, 2014년에는 492조2,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를 GDP 대비 비율로 환산하면 올해 35.1%에서 2014년에는 31.8%로 줄어든다. 그러나 나랏빚의 절대 규모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대외 돌발악재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기대치를 밑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세수 낙관할 수만은 없어=기획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해에 국세를 초과 징수(약 7조2,000억원 초과)했고 올해에도 GDP 증가율 전망치를 다소 하향 조정(5.0% 내외→4.5%)했지만 세수에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최근의 내수 및 설비투자 지표 호전 및 고용 회복세를 감안하고 건설경기가 올해 바닥을 찍을 것이라는 점을 전제하면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나빠질 이유가 없어 2012년 세수에도 큰 위험요인은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가재정운용계획 작업반은 지난달 말 '국가재정 총괄 및 총량 분야' 자료에서 "우리의 장래를 낙관할 수 없는 여러 요인이 존재한다"며 "추격형 성장단계의 종료, 인구 고령화, 서비스업ㆍ중소기업 등의 낮은 생산성 등으로 성장세가 둔화되는 중"이라고 밝혔다. 재정이 취약해지면 해외 돌발변수로 인한 재정정책 운용에 제약을 받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환율 덕 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재정상황이 최상위 수준인 덕에 재정투입 여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국회ㆍ중앙부처 "예산 달라" 목소리 높아져=이런 가운데 재정지출에 대한 압박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재정부는 지난달 말까지 각 부처 등으로부터 2012년 예산 요청 내용을 받았는데 이를 그대로 반영할 경우 내년에 긴축재정을 펴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각종 사업예산 증액 요청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중앙부처 관계자는 "지난해 재정부가 각 부처별로 일률적인 예산 삭감을 단행하면서 상대적으로 뒤로 미뤘던 사업 예산 중 더 지체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들을 주요 부처들이 내년 예산에 반영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지출 요구가 정치권을 통해 노골화되는 것도 재정부 관료들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대학등록금 인하 논란을 놓고 한나라당이 1조5,000억원대의 정부예산 편성을 '질러'버린 게 그 단적인 사례. 올해 이 같은 지출여력이 없는 재정부로서는 이를 내년 사업으로 미루는 식으로 절충하고 있지만 당장 새해 예산 편성작업을 개시한 마당이어서 그다지 시간을 벌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내년부터 이어질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를 의식해 연말 국회 예산처리 과정에서 여야 할 것 없이 지역 선심성 예산 등을 끼워넣을 가능성이 높은 점도 재정부 예산실의 부담거리다. 재정부의 한 간부는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이미지에 대해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없는 변두리 출신이 대기업에 입사해 출세한 사례처럼 비쳐진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홀로 일어선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 평가받기도 하지만 국제신용도만을 놓고 보면 '부모(선조)에게 받은 많은 유산(관광자원 등)으로 놀고 먹는 나라보다 과소평가돼 있다는 의미. 따라서 정부의 살림살이가 포퓰리즘 등에 휘말려 악화되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보다 더 큰 곤경에 처할 수 있다고 재정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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