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봄내음에 취하고...茶향기에 넋잃고...

■ 남도 맛 기행 기차는 광속의 세계를 벗어나 아다지오의 느린 선율로 흐른다. 삼례, 아중, 관촌 등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역들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다. 까만 나무 줄기가 박힌 숲속엔 아직 하얀 잔설이 남아 있고, 먼 들판엔 햇볕에 반사된 아지랑이가 아련한 현기증을 불러 일으킨다. 지리산 자락을 끼고 도는 기차길 옆엔 밟으면 푹 꺼질 것 같은 얼음장 밑으로 졸졸졸 봄이 흐른다. 남도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아 놓은 남원역에 도착하면 기차는 우리를 과거와 현재의 애매한 경계 사이에 던져 놓는다. 구례, 화개, 광양, 순천 등 섬진강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흐르는 듯 마는 듯 유장하게 흐르는 산세가 푸근히 일행을 감싼다. 강 하구로 내려 올수록 산은 멀리 물러나 앉고 강물은 더욱 어깨를 넓게 펼친다. 보성, 벌교, 장흥 등 남도의 해안가엔 화사한 봄 햇살 속에 반짝이는 바다가 수줍은 듯 언뜻언뜻 얼굴을 비춘다. 나른한 오후 좌석을 뒤로 젖힌 여행객의 귓가엔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고 봄 향기에 취한 버스는 선암사행 산길에서 가볍게 볼레로로 몸을 떨었다. #시간이 멈춘 역 남원 익산에서 분리되는 전라선의 중간 지점에 남원이 있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이 곳에서 맛보는 술은 의외로 강쇠주와 옹녀주(山五酒). 함양과 이어지는 지리산 줄기 어디선가 변강쇠와 옹녀가 만났다는 전설이 있다. 남원 시내를 가로 지르는 요천 주변에 있는 20여군데 추어탕 집은 남원추어탕의 원조다. 40년 넘는 전통을 가진 `새집추어탕`이 유명하다. 탕과 숙회, 튀김이 주메뉴다. 산초와 매운 청양고추로 맛을 낸 추어탕은 서울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전국의 유명 인사들이 반드시 들르는 이유가 따로 있다. 새집추어탕 (063)625-2443 #지리산 자락 야생차 향에 취하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중간에 하동군 화개가 있다. 독특한 맛과 향을 내는 야생차로 유명하다. 신라때 최초로 차를 재배한 곳이기도 하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천불사로 이어지는 계곡 양쪽이 모두 야생차 군락지다. 수십군데 다원 중에 `관향다원(觀香茶苑)은 간판도 없어 아는 이만 찾는 곳이다. 주인이 직접 4~5월중 녹차잎을 채취해 말리고 덖는다. 3번은 기본으로 마시고 4번째부터는 다식과 함께 마신다는 설명이다. 100g에 100만원하는 우전(雨前)차에서부터 시기를 달리 해 따낸 세작-중작-대작-말작이 있다. 친절한 주인이 홍시와 쑥환도 별도로 내준다. 관향다원 (055)883-2538 # 매화꽃 피는 마을 청매실농원 섬진강변은 매화나무, 배나무, 벚나무가 즐비하다. 110리 꽃길의 장관이 머지 않았다. 광양의 청매실농원 입구엔 벌써 매화가 얼굴을 내밀었다. 매실명인 홍쌍리 여사가 운영하는 농원은 매실을 원료로 장아찌, 된장, 고추장, 쨈 등을 생산한다. 최근 약 400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돼기도 했다. 매실을 먹여 사육한 한우를 순천의 고깃집 일품매우(一品梅牛)에서 맛볼 수 있다. 쫄깃하고 담백한 육질과 맛이 일반 소고기완 다르다. 청매실농원에서 생산한 매실 된장과 매실 소스, 매실 장아찌가 곁들여진다. 매실차와 매실주는 고기먹은 뒤의 입맛을 깔끔하게 마무리해 준다. 청매실농원 (061)772-4066/ 일품매우 (061)724-5455 #아침의 싱그러움, 보성차밭 /순천 갈대밭 국내 최대규모의 차밭이 있는 보성은 이른 아침의 싱그러움이 함께 한다. 일제 때부터 조성된 대한다원의 차밭은 수려한 경관 덕에 CF, 드라마, 영화 등에 자주 등장한다. 연간 관광객만도 100만명에 이른다. 아기자기하고 신비스러운 삼나무 숲에 둘러싸인 차밭이 여느 정원 못지않다. 차 시음장에서 마시는 한잔의 우전차는 갈증을 풀기 좋다. 순천만 갈대밭은 늪지대와 갈대가 함께 공존하는 특이한 생태를 가진 지역. 바다가 육지로 변해가면서 매면 면적이 증가하고 있다. 갈대와 산새와 햇살이 가득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사뭇 가겹다. 대한다원 (061)852-2593 #바다 내음 가득한 수문포 바지락회 따사로운 햇살을 받은 남도의 바다엔 어디선가 불쑥 봄이 뛰어 나올 것 같다. 장흥의 수문포 바닷가에 위치한 `바다하우스`는 바지락회와 키조개 구이가 별미다. 깐 바지락을 집에서 만든 초장과 야채를 머무린 바지락 회무침은 바다내음을 입안가득 전해준다. 먹다가 남으면 큰 대접에 금방 지은 밥과 톳나물, 참기름을 조금 넣고 살살 비벼 먹는다. 참빗으로 잘 빗어 넘긴 여인네의 머릿발 같은 매생이로 만든 국은 입안에 떠 넣자마자 몸속에 스며 든다. 이 곳에서 조금 떨어진 율포 바닷가로 가면 녹차해수탕에서 여독을 푼 후 길거리서 파는 녹차호떡도 맛볼 수 있다. 바다하우스 (061)862-1021 #가장 한국적인 절집 선암사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에서는 막 출하되기 시작한 딸기 맛을 볼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승주 선암사는 자연과의 절묘한 조화가 찬탄을 자아 낸다. 모 CF 촬영으로 유명세를 탄 이 곳 뒤깐은 최고 깊이가 6m나 되는, 우리나라 전통 화장실중 첫 손 가락에 꼽아야 할 곳이다. 전국 33개 불교 총림중에서 유일하게 조계종이 아닌 태고종이 관할하고 있다. 산사 주변에 상수리, 동백, 단풍, 밤나무 등이 세월의 깊이만큼 꽉꽉 들어 차 있다. 인간문화재 지허스님이 6,000여평의 차밭에서 사찰 고유의 전통차를 만들고 있다. 경칩 즈음에 맞춰 간다면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수액도 맛볼 수 있다. <남원ㆍ순천ㆍ보성(글ㆍ사진)=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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