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슬로시티' 청산도, 쉬엄쉬엄 한걸음… '느림의 길'에서 삶의 여유를 찾다

영화 '서편제' 배경이 된 돌담길…열악한 환경 딛고 일군 구들장논

평화로운 섬 곳곳 가을빛 물들어

해안일주도로엔 꽃 닮은 파도 넘실… 신흥리해수욕장선 전통 휘리 체험

청산진성은 1866년(고종3년) 청산도에 첨사진(僉使鎭)이 신설되면서 당리에 축조됐다. 진의 높이는 15척, 길이는 10리이며 성문은 동·서·남 3문을 두었다.

신흥리해수욕장에 떨어지는 해가 반사돼 한 폭의 수묵화를 연출하고 있다.

석양과 구름이 청산도의 하늘을 곱게 단장하고 있다.


'송화'가 아버지 '유봉'과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걸어 내려오던 둔덕길에는 햇볕이 쏟아져내렸다. 기자가 찾은 가을 청산도는 영화 '서편제'가 촬영됐던 당시의 춘색(春色)과 다를 바 없었다. 철 모르고 노랗게 핀 유채꽃이 그랬고,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벼들도 그랬다. 송화와 유봉이 걷던 그 길이 알록달록한 나들이복을 입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것만 영화와 달랐다.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의 풍경 속에는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라는 명성에 걸맞게 느림의 미학이 녹아 있었다. 하지만 느른한 모습과는 다르게 바다와 바람과 맞서 싸우며 이어온 삶의 흔적이 곳곳에 각인돼 있는 섬이 청산도다. 구들장논과 돌담장은 느림의 상징으로 거듭났지만 치열한 삶을 이어온 섬사람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증거물이다

◇구들장논='서편제'를 제작한 임권택 감독이 몇 년 전 청산도를 다시 찾아 "서편제를 찍기 전에 청산도 들판에서 일하는 아낙들의 모습을 봤다"며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면서 이곳에서 촬영을 하면 영화의 주제인 한(恨)을 녹여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임 감독의 말처럼 청산도는 겉모습처럼 한없이 느리고 평화로운 섬만은 아니다. 청산도의 거의 모든 논밭은 섬사람들의 근육과 힘줄이 일궈낸 다랭이논밭이라는 점이 그것을 설명한다. 다랭이논은 청산도에 있는 23개 마을 중 8곳에 산재하는데 그중 대부분은 조선 한옥의 방바닥과 같은 구조인 구들장논이다.

구들장논은 논바닥에 돌을 구들처럼 깔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만든 구조로 돌을 쌓아 만든 계단식 논의 형태와 암거구조의 지하 관개배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점이 다랭이논과 다르다. 구들장논의 또 다른 특징은 일반 계단식 논의 물이 지표면으로 흐르는 데 비해 통수로를 따라 물이 내려온다는 점이 다르다.

김미경 해설사는 이와 관련, "구들장논은 17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조성돼 경작지가 부족한 청산도에서 쌀생산의 일익을 담당했다"며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 따라 구들장논은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호로 지정됐으며 지난 4월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된 바 있다"고 말했다.

김 해설사는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청산도의 구들장논은 부흥리·양지리·상서리 등지의 총 274필지, 6.9㏊에 달한다"며 "3개 지역 외에도 잇따라 구들장논이 발견되고 있지만 인구 감소와 이농현상에 따라 훼손과 휴경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청산도의 초분 장례='서편제' 영화 촬영지 남쪽으로 내려가면 화랑포공원이 있다. '화랑(花浪)'은 글자 그대로 꽃파도라는 의미로 섬 주변에서 치는 파도의 모습이 꽃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이유로 섬을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의 이름은 화랑로다.

그런 화랑포공원 옆에는 작은 초막 같은 구조물이 있다. 청산도에만 있는 무덤의 한 형태인 '초분(草葬·풀무덤)'이다.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는 무덤의 한 형태다. 실제로 청산도에서는 지금도 초장을 지낸다.

초장이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풀로 에워싸서 초분을 만든 후 그 안에서 부패시키고 2~3년이 지나 육탈이 되면 뼈만 추려 다시 장례를 지내는 방식이다. 초장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가 복잡한 만큼 화장이나 매장에 비해 돈이 두 배로 든다. 따라서 청산도에서는 비교적 부유한 사람들이 치르는 장례 방식이다.


기자가 초분이 아직도 존재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김 해설사는 "이곳 사람들은 부모가 세상을 떴다고 해서 바로 땅에 묻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청산도에서는 초분을 지내는 집 자식들은 효심이 있다고 인정을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신흥리해수욕장의 휘리 체험='몰아 잡는다'라는 의미의 어로 방식인 '휘리'는 해변에서 작은 목선을 타고 'ㄷ'자 모양으로 그물을 쳐 물고기를 잡는 방식을 말한다.

휘리는 한때 자취를 감췄던 청산도 사람들의 어로 방식 중 하나였다. 이것이 사라진 이유는 연안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지금은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체험활동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휘리로 잡히는 어종은 철마다 다른데 여름에는 참돔과 강성돔이 잡히고 가을철인 지금은 숭어와 한치가 제철이다. 기자가 휘리 체험을 한 날은 사람이 모자라 경운기가 그물 한쪽을 끌고 나머지 한쪽은 사람들이 끌었다. 350m에 달하는 그물을 해변으로 끌어내기 시작하자 숭어로 짐작되는 물고기들이 튀어오르며 그물 밖으로 도망쳤다. 해변으로 끌어낸 휘리그물에는 학꽁치 세 마리, 도다리 두 마리, 서대 두 마리, 모래무지 두 마리가 잡혀 올라와 그 자리에서 바로 회를 떴다.

휘리 체험을 위한 최소인원은 20명 이상이지만 축제 기간에는 5명 이상이면 가능하다. 밀물 때만 그물을 칠 수 있어 체험은 하루 한번밖에 할 수 없다. 체험비는 1인당 1만원이지만 청산도 내에서 숙박을 하거나 농수산물을 구입한 사람들은 50% 할인해준다.

◇청산도, 가을의 향기=전남 완도군은 11일까지 슬로시티 '청산도 가을의 향기'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번 행사에는 힐링캠프로 잘 알려진 김제동씨가 참여해 10일 관광객들과 슬로길을 걸으며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김씨는 지난해 완도군이 실시한 청산도 슬로길을 함께 걷고 싶은 명사로 네티즌들의 추천을 받아 참여하게 됐다.

청산도는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후 매년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지난해에는 37만명이 다녀갔다. 4월12일에는 8,100여명이 찾아와 일일 최다 방문객을 기록하기도 했다.

/청산도=글·사진 우현석 객원기자

대접 가득 전복·미역·가시리… 입 안 가득 바다 내음

■ 별미-느린섬여행학교 '전복해초비빔밥'

청산도에는 완도군이 폐교를 리모델링해 슬로푸드와 숙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느린섬여행학교가 있다. 느린섬여행학교의 전복해초비빔밥(사진)은 청산도의 별미다. 육지의 비빔밥이 시금치·콩나물 등 일반 나물 혹은 산채에 비벼 먹는 데 비해 청산도의 전복해초비빔밥에는 전복과 미역·가시리 같은 해초들이 들어간다. 물론 이들 해초 외에 시금치 같은 나물도 들어간다.

해초와 전복이 담긴 대접에 밥과 고추장·참기름을 넣고 비빈 후 한 숟가락 입에 떠 넣으면 바다 내음이 한가득 퍼진다. 육지의 비빔밥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맛이 있다. (061)554-6962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