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사각링'서 보여주는 희망2001년 서울 266만, 전국 818만명의 경이로운 흥행기록을 세우며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친구'의 곽경택 감독ㆍ유오성 주연ㆍ조원장 프로듀서ㆍ제족의 코리아픽처스 팀들이 1년 만에 신작 '챔피언'을 들고 28일 관객을 맞는다.
영화 '챔피언'은 82년 미국에서 WBA 라이트급 타이틀을 놓고 레이 붐붐 맨시니와 일전을 벌였다가 숨진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24일 첫 시사를 가진 '챔피언'은 권투영화라 해서 치열한 권투시합이 나오거나 성공과 출세를 향한 한 남자의 드라마틱함을 보여주기 보다는 생존을 위해 사각의 링에 올라 싸워야만 했던 한 사람의 불행했던 삶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생존 드라마로 곽감독 특유의 연출력으로 2시간동안 관객을 끌고 가는데 성공하지만, 극적인 드라마나 탄성을 지를만한 명승부의 대결장면은 나오지 않아 '밋밋하다'라는 반응도 있다.
강원도 속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득구.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재혼, 이복형제들과의 불화와 친구들로부터 손가락질 등 어려서부터 순탄치 못했던 모습이 영화 중간중간 보여주면서 가진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는 그가 복서를 해야 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주먹을 제대로 못 썼으면 깡패가 됐을 법했음을 강조하는 듯 하다.
영화 '챔피언'은 '인생에서 진정한 챔피언은 이긴 사람이 아닌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갖는 타이틀'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시저스팰리스 특설링. 링 아나운서의 소개에 따라 관중에게 인사를 마친 두 선수가 공이 울리는 것과 함께 주먹을 교환하는 순간 카메라는 여러 각도에서 스톱모션으로 이들의 모습을 잡고 타이틀 자막이 흐른다.
김선수의 소식을 담은 배경 화면의 신문기사에서 활자들이 살아움직이며 제작진의 이름을 새기는 이 장면은 영화의 다큐멘터리적 특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김선수의 명승부가 박제화된 역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전설임을 웅변하고 있다.
강원도 고성의 바닷가에서 자란 소년이 무작정 상경해 갖은 고생을 겪다가 우연히 복싱 경기 포스터를 보고 체육관의 문을 두드리는 과정은 역대 챔피언들과 다르지 않다.
당시만 해도 몸뚱이 하나로 돈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일 중에 복싱만큼정직하고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득구는 유망주로 출발하지 않았다. 그의 전적을 보면 흔히 '천재 복서'라고 불리는 챔피언들처럼 화려하지 않다. 힘겹게 한 계단씩 올라서며 정상의 꿈을 다졌고 마침내 '챔피언'이란 칭호를 얻었다.
이 영화는 80년대 복고풍 화면이 자아내는 흐뭇한 향수에다가 약혼녀와의 아기자기한 데이트, 체육관 동료와의 훈훈한우정 등이 겹쳐 쉴새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차장이 '오라잇'을 외치는 말죽거리행 버스, 띠운세가 나오는 다방 재떨이,나이트 클럽의 허슬 춤, 석유 '곤로'에 끓여먹는 삼양라면, 줄무늬 커플 티셔츠와 '라이방' 잠자리 안경 등의 소품을 보면 곽감독은 복고풍 화면 재현에 탁월한 솜씨를 지닌 듯하다.
타이틀롤의 유오성 역시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박진감 넘치는 권투 장면과 순진한 강원도 청년의 연기를 실감나게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