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위기 경고음 커지는 기업] 기업 32% 작은 충격에 휘청… 환율효과 취해 심각성 몰라

■ 삼성연 "한국기업 이상징후"<br>계속되는 위기로 질적구조 등도 급속 악화<br>긴축경영만으론 한계… 새 수요 창출 필요


&&& 기업 32% 작은 충격에도 도산 가능성…환율착시효과 취해 심각성 인식 못해

“한국호(號)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때와 달리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해서 더 큰일이다.”


한국경제의 저성장과 한계봉착에 대해 침묵하고 있던 국내 최대 민간 싱크탱크 삼성경제연구소가 입을 열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성공적 극복,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와 사상 최대 외국인투자 유입에 “신흥국 내에서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하던 정부를 정면 반박한 셈이다.

이날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 역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2014년 한국경제전망’을 주제로 강의하며 ‘위기의식’을 수 차례 강조했다. 저성장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외환위기 당시처럼 긴축경영 만으로 위기를 돌파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다.

◇환율 착시효과에 취한 한국기업, 체력은 ‘바닥’=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기업은 2011년부터 체력이 급속히 소진되고 있다.

환율 착시현상만 봐도 그렇다. 환율상승에 따른 환산효과를 걷어낼 경우 미국과 일본기업이 역성장 했던 2009년 한국기업 역시 -4%로 역성장 했다. ‘나홀로 호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보고서는 지난 4월 멕킨지가 발표한 한국보고서를 인용, “이번 위기는 저강도 충격이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 속’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기업들은 평균 실적뿐 아니라 질적 구조도 악화하고 있다. 매출증가율과 영업이익률 5% 미만 기업을 ‘저성과기업’, 10% 이상인 기업을 ‘고성과기업’으로 구분해 조사한 결과, 2010년 이후 실적이 악화된 저성과기업 비중은 2010년 25%에서 2012년 42%로 급증한 반면, 고성과기업은 16%에서 9%로 쪼그라들었다. 금융시장의 작은 충격에도 도산할 수 있는 ‘채무상환능력 취약기업’ 비중은 2010년 22%에서 2012년 32%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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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기업들이 버티고 있다지만 상황을 낙관할 수도 없다.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 수를 비교한 결과 2008년과 2012년 사이 중국은 29개에서 73개, 일본은 64개에서 68개로 늘어난 반면 한국은 오히려 15개에서 13개로 줄었다. 보고서는 “수출주력업종의 대표기업이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경쟁력이 개선됐지만, 2013년 상반기 매출증가율이 4.5%로 하락해 향후에도 선전을 낙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새로운 게임의 룰’ 선점해야=정 소장은 이날 사장단 강의에서 “성장 모멘텀 확보와 위기 대비라는 두 개의 난제를 동시에 돌파하는 기업의 실행력 제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양적완화 축소는 2014년 중 본격화해 세계경기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며 “양적완화 축소가 본격화하면 금리 상승, 글로벌 유동성 축소 등으로 금융불안이 증가하고 세계경제 회복세가 둔화될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또 “취약한 펀더멘털과 미국 양적완화 축소 우려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신흥국 성장이 둔화돼 세계경제 회복을 저해할 것”이라며 “우리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여력은 약화된 상황이며 민간부문 회복세도 취약해 성장 모멘텀 약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저성장도 문제지만, 위기 이후 기업의 경영환경도 완전히 변했다. 보고서는 “리더십, 사업구조, 경영관리시스템 등 한국기업경영의 주요 부문에도 최근 5년간 주목할 만한 변화가 감지된다”고 분석했다. 우선 글로벌 기업보다 높았던 CEO 교체비율이 낮아지는 등 리더십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사회이사 비중을 늘리는 등 의사결정 과정도 투명해졌다.

불투명한 기업환경으로 인해 새로운 사업영역 발굴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신규사업 진출을 검토하는 기업체 비중은 지난 2006년 8.5%에서 2011년 4%로 반토막 났다. 글로벌 진출을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노력도 급감, 한국기업의 해외직접투자 연평균 증가율은 2003~2007년 47.2%에서 2008~2012년 -0.8%로 추락했다.

보고서는 “지난 몇 년 간 대표기업을 중심으로 좋은 실적이 이어지면서 국내외 저성장 기조 장기화에 다른 위기의식이 크게 둔화됐다”며 “미래를 위한 방향성에 구심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이어 “구조적으로 변화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새로운 게임의 룰을 선도’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업, 정부, 사회 모두 현 위기의 심각성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외환위기 당시에 사업 구조조정과 슬림화로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다면, 최근 위기에는 사업 및 제품의 통합ㆍ확장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이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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