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4일 정례회의에서 '인내심' 표현이 삭제된 성명을 발표한 것을 두고 월가는 금리를 인상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FOMC는 많은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이 예상했던대로 46년만에 최저인 연 1%의 연방기금 금리 유지를 결정하면서 종전 성명에 반영됐던 "수용적 금리정책을 제거하는 데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다"는 표현을 삭제했다.
FOMC는 그동안 미국 경제의 굳건한 회복세를 인정하면서도 노동시장의 회복이 지연되고 있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희박하는 점 등을 들어 저금리 기조를 변경하는데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월가 이코노미스트들과 투자자들은 FOMC 정례회의 후 발표되는 성명에서 단기간 내 금리인상 가능성을 배제하는 역할을해온 이 표현이 삭제될 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FOMC 성명은 더욱 뚜렷해진 경제 성장세와 거의 동등해진 인플레이션 및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수용적 정책(저금리)는 아마도 신중한 속도로 제거될 수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해 "지난 정례 회의 후 축적된증거들은 생산이 견실한 확충을 지속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고 고용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상당수 월가 관계자들은 '신중한 속도(measured pace)'라는 용어를 통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FOMC가 금리인상이 임박한 것은 아님을 우회적으로 밝혔다고 보고 있다.
JP모건 프라이빗 뱅크의 잭 캐프리 주식 전략가는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FOMC의 이와 같은 언급은 금리인상이 예측가능할 것이며 과도하게 빠르거나 경제회복을 저해할 정도는 아님을 강조한 것으로 보여 투자자들에게는 안도감을 준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이미 가시화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조짐을 감안해 그린스펀 의장이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을 지적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CBS 마켓워치에 따르면FX 애널리틱스의 데이비드 길모어 외환 분석가는 "연방준비제도 당국자들이 공개적으로 표명은 하지 않았지만 소비자 신용과 부동산 부문에 거품이 처리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면서 앨런 그린스펀 의장과 FOMC의 선제적조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월가 관계자들은 그린스펀 의장이 인플레이션이나 버블 방지를 위해 선제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이르면 6월, 늦어도 8월쯤에는 금리인상을 재개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경제회복세가 주로 세금감면과 부동산 모기지(주택저당대출) 조건 변경등을 통해 현금을 확보한 소비자들의 소비증대에 의존하고 있고 자생력이 아직 미약한만큼 저금리 정책이 좀더 유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골드만 삭스의 빌 더들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는 올해 하반기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소비지출은 취약하고 실질임금 성장도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지역의 경제회복세가 취약한 가운데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의 양대 엔진 역할을 해온 중국이 긴축정책을 시사하고 나선 점도 그린스펀 의장과 FOMC가 선뜻 금리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일부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설명한다.
종합할 때 월가에서는 그린스펀 의장과 FOMC가 과거의 '상당한 기간 저금리 기조 유지'나 '인내심 발휘' 등의 '구속력 있는' 표현을 삭제함으로써 향후 행동의 자유를 확보하되 금리인상이 재개되더라도 시기나 폭에서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임을 이번 성명을 통해 밝힌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FOMC 회의를 앞두고금융시장이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과는 달리 이날 주식 시장은 FOMC 성명 발표후 강세로 돌아섰고 미국 달러화는 약세를 보였다.
(뉴욕=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