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秘錄, 김우중 신화의 몰락] <제3막 3장> GM 스토리: 한여름 밤의 꿈

"GM서 100억弗들여온다면…" 몽상 물거품

GM에 마지막 求愛 나섰지만… 1996년 포드, 크라이슬러, GM 등 세계 자동차 '빅3' 의 거두(巨頭)들 앞에서 자신의 '자동차 경영'을 설파하던 김우중 회장(사진 위). 이때까지 GM은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상대였다. 그러나 위기는 그를 너무나도 초라하게 만들었다. 워크아웃 직전인 99년 8월6일 GM의 소매자락을 부여잡고 제휴 협상을 위한 MOU를 체결했지만, 몰락을 막기에는 때가 이미 늦었다. /서울경제 DB


⇒(전편에서 계속) 98년9월, GM과의 극비 프로젝트는 그렇게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한달 뒤, 기아자동차 인수전에서의 패배. 생존의 카드는 하나 하나 사라져 갔다. 자금위기는 해외에서부터 목줄을 조여 와 턱밑까지 치고 올라 왔다. 승부사 김우중, 그가 넋을 놓고 앉아 있을 리 없었다. 99년 11월29일. 경기도 포천의 대우 아도니스 골프장. 오전 8시가 조금 안된 시각. 검은색 야구모자를 쓴 노년 신사가 나타났다. 뇌경막하혈종 제거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된 즈음이었다. 출입 기자들과 갖는 모처럼의 골프장 모임. 건장함을 과시하려는 듯, 김 회장은 애써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골프코스로 막 들어가려던 무렵, 회색 대우 유니폼을 입은 김태구 구조조정본부장이 화급히 달려왔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과 함께였다. 3시간여후. 김 회장이 서둘러 떠났다. 도착한 곳은 청와대. 그는 이날 김대중(DJ) 대통령에게 큰 선물을 하나 바쳤다. 삼성과의 자동차-전자 빅딜이었다. 그는 이렇게 GM과 결별한지 두 달도 안돼 또 다른 카드를 만들어 냈다. ‘바둑 광’이었던 김우중. 그는 ‘수’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GM과 헤어졌다고 해서 삼성과의 빅딜에 막무가내로 매달릴 그가 아니었다. 빅딜이 끝내 성사될 수 없을 것이란 가정을 이미 세우고 있었을지도 모를 터. 김 회장에게 ‘GM카드’는 여전히 버릴 수 없는 카드였다. 상황은 그의 짐작대로였다. 삼성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돈 줄만 빠르게 말라 갔다. 금융감독위원회가 기업어음(CP)과 회사채 한도를 제한하면서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돈을 조달하기가 불가능해졌고, 곳간인 BFC(영국금융센터)의 차입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대우 계열사 국제금융팀에 몸담고 있었던 A씨는 당시의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기억했다. “98년 하반기 들어 해외 법인의 비명소리가 나날이 커져 갔지요. 국내 은행에서 수출금융을 조달해 조금씩 융통해 보냈지만 턱도 없었습니다. 본사가 할 수 있는 말은 GM과 협상이 끝날 때까지만 기다리라는 것 뿐…, 회장님만 믿어보자는 것이었죠.” 그랬다. 김 회장은 여전히 몽상에 빠져 있었다. “GM을 통해 100억달러, 아니 적어도 50억달러는 들여올 수 있다.” 잔인한 98년. 해를 넘기면서 위기는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치달았다. 김 회장의 몸이 닳기 시작했다. 그를 보는 DJ의 눈길도 예전만 하지 못했고, 삼성과의 협상은 예상대로 질척거렸다. 역시 기댈 곳은 GM뿐이었다. 하지만 GM은 여전히 파업의 후유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경영권을 둘러싼 동상이몽은 여전히 계속됐고, 협상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악재는 겹쳐 다가왔다. GM과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사이 해외 자동차 법인들마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자금난을 호소하더니 해외 판매량이 급속하게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1월말, 우크라이나 ‘오토자즈-대우’의 철수설이 외신으로부터 흘러 나왔다. 오토자즈는 95년 FSO에 이어 97년 인수전에서 또다시 거함 GM을 쓰러뜨린 곳. GM과 생명을 건 협상을 추진하던 중에 터져 나온 철수설은 김 회장에게 당혹감을 안겨 줬다. 쫓기는 자의 허황된 몸짓일까. 99년 2월. 위기 상황에서 그가 항상 선택한 방법은 ‘역(逆) 방향’이었다. “그룹 내 자동차사업의 현상황과 미래경쟁력을 점검하기 위해 컨설팅사인 KPMG에 평가용역을 주었다." (김태구 본부장) 명분은 대우차의 경쟁력에 대한 의문을 객관적인 평가기관을 통해 해소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협상 파트너에게 “우리는 이렇게 멀쩡하다”는 ‘시위’였다. 효력을 발휘하는 듯했다. 자금난이 한계 상황에 다다르던 99년 3월. 협상은 진전 기미를 보이는 듯했다. 대우중공업 창원 경차 공장의 마티즈와 티코 생산설비 매각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다. 창원 경차 라인은 연간 24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마티즈와 티코도 24시간 풀가동하고 있던 알짜 공장. 하지만 시간은 이제 그의 편이 아니었다. 상대편의 약점을 그냥 놓칠 GM이 아니었다. 대우의 자금난이 수면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본 GM, 그들이 쉽사리 김 회장이 내민 구원(救援)의 손을 내밀어 줄 리 없었다. 아니 이 때까지 김 회장도 목숨을 걸만큼 간절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여전히 삼성차라는 최후의 카드가 있었으니까. 협상 상대방인 GM에게 그나마 ‘소리’를 낼 수 있었다. GM은 좀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지만….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99년 6월30일. 느닷없이 터져 나온 삼성차의 법정관리 선언,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7월19일 정부의 최후 통첩. 그는 이제 꼼짝없이 외통수에 몰렸다. 그나마 7월 정부와의 담판에서 “마지막 자동차 구조조정은 자신이 맡는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에 만족해야 했다. 남은 시간은 그야말로 얼마 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 サ若?GM뿐이었다. GM을 부여 잡고 마지막 담판을 노렸다. 명운(命運)이 다해가는 것일까. 한달 후 찾아올 비극을 암시라도 하듯, 뜻밖의 일이 터졌다. 마지막 자구 안을 내놓은 지 나흘 후인 7월23일자 조간 신문은 코너에 몰린 김 회장에게 ‘펀치’를 날렸다. “대우차를 삼성에 넘기는 방안이 여권에서 고려되고 있다. 박태준 총재의 참모들이 삼성차를 대우에 넘기는데 대해 비판 의견을 보이고 있다.” 회생의 마지막 끈이었던 자동차를 자신이 먹으려 했던 곳에 넘기겠다니. 김 회장은 곧장 오랜 ‘동지’인 박태준 자민련 총재의 북아현동 자택을 찾았다. 반응은 냉담했다. 박 총재는 “사실과 다르다”며 해명했지만, 김 회장은 그의 마음 속에서 이미 떠나 있었다. 박 총재는 며칠 전 간담회에서 “3각 빅딜을 처음부터 알려줬는데 전경련에서 틀었다”며 그에 대한 섭섭함을 우회적으로 표시한 상황이었다. ‘역(逆) 빅딜설’ 부상 닷새만인 28일, 새마을중앙연수원에서 열린 자민련 정책분과위원회 세미나.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마디로 잘랐다. “상식적으로 가능하겠느냐. 삼성은 자동차를 포기한다고 했는데 대우차를 이제와 인수하겠느냐.” 한 숨을 돌렸다. 하지만 한 눈을 팔고 있는 사이 그룹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으로 흘렀다. 부평공장으로 베이스캠프를 옮기고, GM과 필사의 담판에 들어갔다. 그의 의지는 8월초 가시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듯했다. 99년 8월5일 대우센터. 김태구 대우차 사장과 앨런 패리튼 GM코리아 사장이 마주했다. 전략적 제휴를 협상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98년 9월 파경을 선언한지 11개월만이었다. “이번 협상에서는 경영권 문제가 중요한 대상이 될 것이다.”(김태구 사장) 지분 51% 이상도 넘겨줄 수 있다는 선언, 협상의 큰 곡선이 바뀌는 듯 해보였다. 곳곳에서 막판 회생에 대한 기대감이 풍겨 나왔다. GM이란 회사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GM을 과신하는 것 자체가 우스웠고,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MOU는 문안 그대로 ‘협상을 위한’이란 의미 없는 문서였다. MOU 발표 엿새만인 8월 11일. 잭 스미스 회장은 대우에 비수를 던졌다. “제휴협상 성사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타결이 곧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98년 6월, “대우차 부채가 너무 많다”며 김대중 대통령을 실망시켰던 스미스 회장, 그는 또 다시 김 회장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FSO 인수전부터 시작된 ‘원한’, 복수치고는 너무나 비정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마지막 구애(求愛)에 나섰다. 스미스 발언 다음날, 김 회장은 곧바로 ㈜대우의 공사 미수금 5억 달러를 받기 위해 리비아로 떠나면서 김태구 사장을 디트로이트로 급파했다. 8월16일, 김 사장은 스미스를 찾아 그룹의 자금사정을 터 놓고 얘기했다.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원한도 정(情)이라고 했던가. 스미스 회장은 루 휴즈 사장을 한국에 보냈다. 하지만 그것은 ‘협상을 진행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쇼맨십이란 표현이 오히려 어울렸다. 정부와 뱅커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관료들은 그 것을 잘 알았다. 예고된 스케줄에는 변함이 없었다. 8월26일 워크아웃 실행, GM은 김 회장과 맺어온 인연의 끈을 사실상 놓아 버렸다. 미국 대선에 나섰던 억만장자 로스 페로. 그는 GM의 의사결정 방식을 두고 비꼬듯 이렇게 말을 했다. “우리 회사에선 뱀을 발견하면 즉시 잡아 죽인다. 그런데 GM은 위원회를 만들고 전문가에게 뱀에 관한 자문을 받는다. 그리곤 일년씩이나 협의를 거듭한다.” GM에 대한 김 회장의 덧없는 매달림은 이렇게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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