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 여파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들이 크게 증가했지만, 실제 심사를 통과해 회생인가결정을 받는 건수는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타이밍이 늦어 회생가능성이 낮아진데다, 기업실적의 주요 변수인 환율, 원자재가격 등이 현 상태로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서 기업의 실적을 추정하다 보니 계속기업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3일 대법원에 따르면 전국 법원의 법정관리(기업회생) 신청 및 인가건수는 2006년 76건에 9건으로 11%의 인가율을 보였으나, 2007년에는 116건에 41건(3.5%), 지난해 366건에 13건(3%)를 기록하는 등 인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추세에 있다. 특히 올 10월말 현재는 560건 신청에 단 11건만 법정관리신청이 받아들여져 인가율이 2%에 불과했다. 100개의 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법원의 심사를 통과하는 경우는 단 2개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법정관리 인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낮거나, 주 채권자인 은행이 법정관리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법정관리 신청기업의 재무상태를 조사하는 회계법인들의 심사가 엄격해져 계속기업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기업실적이 고환율과 높은 원자재가격 등으로 낮게 평가돼 계속기업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실제 ㈜아이텔코리아, ㈜키러스트, ㈜시큐어넥서스 등 다수의 기업들이 최근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낮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받았다. 대형 로펌의 한 도산전문 변호사는 "회계법인들이 현재의 경기불황이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가정하고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경제상황에 따라 실적의 부침이 심한 기업들의 경우 계속기업가치 산정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법정관리를 꺼리는 금융기관들의 태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파산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주채권자인 은행의 눈치를 보면서 법정관리 신청을 주저하다 보니, 회생 불가능상 상태로 몰린 뒤에야 법원의 문을 두드린다는 설명이다.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홍성준 변호사는 "은행들은 채권액 일부를 조정해야 하는 법정관리를 극도로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파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고 채권액 일부라도 회수하기 위해서는 법정관리에 대한 은행들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모럴해저드 방지를 위해 법원이 고액연봉의 자영업자 회생신청에 대해 엄격한 심사를 하면서 의사ㆍ한의사 등 채무액 5억원 이상 자영업자들의 회생신청도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고액채무자들의 회생신청은 2007년 99건에서 지난해 216건, 올해 상반기 300여건으로 매년 늘고 있지만, 실제 인가건수는 2007년 27건, 지난해 2건, 올해 8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홍 변호사는 "자영업자의 경우 사적인 채무가 많은 것이 특징"이라며 "채권자들이 감정에 얽혀 회생절차를 동의해주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