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건설사 설계 허가」 논란 첨예화

◎건축사협회­“WTO서도 전문영역 독점 인정”/건교부·학계­“설계·시공 견제기능 상실 우려”/공정거래위­“시장진입규제·경쟁제한 해소차원”/건설단체연­“건축사 영세 첨단부분 아직 미흡”건축설계업계가 신년벽두부터 초긴장상태에 돌입해 있다. 지금까지 건축사들만이 건축설계업을 할 수 있도록 해온 독점권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관계법령의 개정을 통해 건설회사들도 건축설계를 허가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공정거래위원회는 건설·통신·에너지·금융 등 4개산업분야의 관련법들을 재검토, 경쟁제한적 요소들을 찾아 규제요인을 완화한다는 목적으로 「경쟁제한법령」개정작업을 추진해왔다. 공정위는 이들 분야의 개선작업을 관계부처간 협의를 통해 지난해말까지 거의 마무리했으나,「건축사의 사업활동제한」과 「LNG수출입 승인제」 등 2개과제는 합의를 이루지 못해 건설교통부 등 관계부처간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건축사의 사업활동제한」건은 건축설계업계와 건설업계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문제로 최근 3∼4년간에 걸쳐 집요하게 논쟁을 계속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건설교통부는 건설산업기본법 제정을 계기로 기존의 방식대로 설계·시공분리의 원칙을 고수하기로 결론를 내리고 마무리를 했다. 결국 건축설계업계는 몇년에 걸친 지루한 논쟁을 거쳐 관련부처인 건설교통부와는 「설계·시공분리」를 고수하기로 깨끗하게 정리를 했는데, 또다시 공정위와 동일한 사안을 두고 힘겹게 입장설명을 계속하게되자 심한 허탈감과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현재 건축설계는 건축사자격을 가진 사람만 건축설계사무소를 개설,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돼있고(건축사법) 시공분야인 건설업의 경우는 건설업면허를 가진 업체만 하도록 돼있다(건설업법). 이 「건축사의 건축설계업 독점영위권」에 대해 당사자인 건축계·공정위·건설업계·건축학계·해외상황 등을 살펴본다. ◇건설교통부=건설회사의 설계·시공 겸업에 대해 ▲설계와 시공간 상호견제기능이 상실되어 부조리와 부실이 조장될 우려가 있고 ▲건설업체들의 시공편의주의 설계 양산으로 건축설계의 질저하 ▲설계가 공사수주·입찰의 수단화 전락(건축설계비는 건설생산품 총비용중 3∼4%에 불과하기 때문) ▲정부의 부문별 전문화 시책에도 부적합 등의 이유를 들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지금은 설계와 시공의 더욱 철저한 분리를 통해 각자의 전문성을 더욱 제고해서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상호유기적 협력체계 구축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건교부의 시각이다. ◇대한건축사협회=국내 건축설계업계의 대표단체인 대한건축사협회의 입장은 단호하다. 지난 94년 이미 행정쇄신위원회와 건설교통부가 신중한 검토 끝에 설계·시공의 분리로 전문성을 제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듯이 이번 역시 같은 입장이다. 협회는 건설업계의 설계업 허용에 대해 ▲건축문화의 발전저해 ▲중소 건축사무소의 도산 우려 ▲현재도 사실상 대형건설사는 건축설계사무소의 계열사 운영을 통해 설계업을 하고 있고 ▲각 업역의 전문성 제고를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 목적에 부적합 ▲WTO에서도 건축설계는 용역분야로 취급, 전문영역의 독점성격을 인정하고 있는 현실 ▲외국에서의 분리 운영 현황 등의 논리를 들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현행제도는 건축설계시장 진입규제 및 건축사의 사업활동을 제약하는 경쟁제한 측면이 크다는 전제아래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몇차례의 관계기관회의를 거쳐 의견을 조정해가고 있는 중이며 이달중에 다시 회의를 통해 개정방향을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공정위는 건설교통부와 건축사협회 등 설계업계가 반대하는 논리와 건설단체연합회 등 건설업계의 찬성 이유 등 의견을 종합, 지난해말까지는 건설업계의 설계업 허용에 대해 부분적·단계적 진출안을 검토했으나, 이에 대해서도 건교부와 건축설계업계가 불합리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어 향후 공정위의 방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건설단체연합회=국내 건설업체 단체인 한국건설단체연합회는 현재 설계·시공의 엄격한 분리로 ▲시공과정에서 얻어진 신기술이 설계로의 환류가 어렵고 ▲건설사 소속 건축사의 설계불가로 경제적·행정적 낭비 발생 ▲건축사사무소의 영세성으로 첨단건축물 설계 불가능 ▲선진외국업체 국내 설계시장 잠식 우려 등의 이유를 들어 3∼4년 전부터 강력하게 건설회사의 설계업 허용을 주장해왔다. ◇건축학계=대한건축학회는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의견제시를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축학교수들은 「설계·시공분리」를 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한건축학회 회장 이정덕교수(고려대학교 건축과)는 『업역간 이해 다툼이나 생산성과 효율성 차원의 접근이어서는 안된다』고 밝히고 『생산성과 기술을 요하는 건설업분야와 창조적 디자인작업인 건축설계를 한 업체에서 동시수행한다는 것은 분리 운영하는 것보다 건설생산물의 품질과 건축문화의 향상차원에서 크게 불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일한 사안을 여러기관에서 그것도 몇년에 걸쳐 이미 결론을 내렸는데도 계속해서 재론한다는 것은 행정력낭비』라고 밝혔다. ◇외국현황=독일·프랑스·영국·동남아(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의 국가는 공장 등 플랜트 건설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설계·시공분리」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각 주별로 분리와 통합이 각각 다르다. 그러나 미국은 계약 및 보험제도가 발달돼 전문설계회사가 아니면 사실상 건축설계가 불가능하다. 일본은 분리와 통합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 「설계·시공 통합」의 경우는 ▲대형 설계용역사가 일부 시공을 할 때와 ▲시공회사가 설계팀을 소유하고 경영할 때인데 이 경우도 민간공사에 한해서 가능하다. 설계·시공을 반드시 분리해야할 경우는 공공공사와 현상설계 때다. 미국의 벡텔(Becthel)사와 일본의 대성건설·삼릉건설 등 대규모 외국사들의 경우는 원자력·석유화학·비료 등 자원개발사업, 통신·우주항공사업, 공항·항만·군전략사업 등의 플랜트와 대규모 복합프로젝트를 턴키(설계시공 일괄수행)나 개발제안형 방식으로 수주하고 있다. 이 경우도 건축설계나 시공은 대부분 전문설계회사나 건설업체에 각각 하청으로 위탁한다. 이들 회사는 프로젝트관리(PM) 등을 통해 회사를 운영하는 일종의 대규모 관리회사다.<박영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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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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