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리빙 앤 조이] 공연과 방송 경계를 허물다

열차하는 클래지콰이 보컬 호란

그룹 ‘클래지콰이’ /이호재기자

공개녹화 공연장에서 관객은 더 이상 ‘우~’ 소리나 지르는 장식품이 아니다. 신나게 노래부르고 즐기는 현장 그 자체가 최고의 방송용 음악 프로그램이다. 23일 서울 홍익대 앞 클럽 M2에서 열렸던 MTV ‘트루 뮤직 라이브’ 녹화현장. 일렉트로니카밴드 ‘W’

사회자는 없다. 카메라도 보이지 않는다. 무대는 청담동, 대학로 혹은 홍익대 앞 클럽. 가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무대를 꾸미고, 관객들은 스탠딩 객석을 구르며 환호한다. 춤 추는 뒤쪽 관객 사이 사이엔 연인 사이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가벼운 입맞춤도 나눈다. 이제는 익숙한 클럽파티공연 풍경. 그러나 이 곳은 공개방송 녹화현장이다. 물론 케이블TV 음악방송이다. 지상파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이런 모습은 케이블TV에선 ‘실험적’이라는 말도 진부한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뮤직비디오나 틀어주고 연예인 신변잡기에 골몰했던 케이블 음악채널 들이 클럽으로, 공연장으로 뛰쳐 나왔다. CD음악에 입만 벙긋거리는 립싱크도, 똑 같은 옷을 맞춰 입고 풍선을 흔드는 이른바 ‘빠순이’도 없다. 1시간 넘게 탄탄한 라이브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실력파 뮤지션들만 설 수 있는 무대다. 공연장에 ‘방송’은 없다. 뮤지션과 관객과의 뜨거운 교감이 있을 뿐이다. ■케이블 음악채널 녹화현장에 가다
지난 18일 저녁 서울 청담동 하드록까페 클럽. 오후 8시에 시작하는 공연을 기다리는 인파로 클럽 앞은 장사진이다. 이 날 이 곳에선 새 앨범 발표를 앞둔 인기 록 밴드 ‘델리 스파이스’의 쇼케이스가 열린다. 케이블 음악채널 KM에서 녹화해 틀어주는 공개방송 ‘사운드 플라이트’ 녹화지만, 클럽 안에는 방송용 조명도, 집채만한 카메라도 찾아볼 수 없다. 관객 중 상당수는 이 날 공연이 방송되는 줄도 모르고 있다. 공연장은 여느 클럽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쿠폰을 내고 음료를 타 마시는 관객, 테이블에 앉아 같이 온 친구와 수다를 떠는 관객, 무대 앞에 바짝 붙어 공연이 시작되기만 기다리는 관객 등 풍경도 제 각각이다. 밴드가 무대에 서자 이내 공연은 시작됐다. 밴드 옆에서 열심히 소형 카메라로 찍는 남자만이 이 날 공연이 방송용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8시에 시작한 공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후끈 달아올랐다. 밴드 멤버들은 각자 악기를 놓고 무대 맞은편 턴테이블 앞에서 일일 DJ로 변신했다. 화려한 음악 선곡과 재치 넘치는 리믹스는 관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벌써 오후 12시. 아무도 자리를 뜨는 이는 없다. 2부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멤버들은 요리사 복장을 입고는 그간의 히트곡을 연주한다. 새벽 1시. 파티는 이제서야 절정에 달했다. 녹화는 도대체 어디서 이뤄지는 걸까. ■개성 넘치는 밴드 혼신의 공연 관객들은 방송되는 줄도 몰라
23일 저녁 서울 홍대앞 클럽 ‘M2’. 음악채널 MTV ‘트루 뮤직 라이브’ 공개녹화 현장이다. 클럽 안엔 그리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무대와 스탠딩 객석이 마련됐다. 방송용이지만 카메라는 모두 객석 뒤에 있다. 카메라를 뺀 방송 기자재는 아예 객석이 없는 2층에 올려 버렸다. 사전MC를 일컫는 이른바 ‘바람잡이’ 따윈 없다. 관객들은 저마다 공연장에서 준 맥주캔을 손에 쥐고 공연이 시작되기만 기다린다. 이 날은 일렉트로니카 밴드 ‘W’와 ‘클래지콰이’의 합동공연이 마련됐다. 요즘 20대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이다. 갓 도서관에서 나온 듯한 ‘모범생’ 복장의 학생부터 호피무늬 코트가 범상치 않은 짙은 화장의 여자 관객까지, 카메라가 있는 지도 모른 채 스탠딩 객석을 구른다. 객석 맨 뒤에선 아예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에 맞춰 혼자 춤을 추는 관객도 있다. ‘열린음악회’ ‘음악캠프’만이 공개방송의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문화적 충격마저 느낄 공간이다. 공연은 ‘방송’ 이전에 공연일 뿐이다. 카메라도, 조명도 이 곳에선 관객 뒤에 숨은 ‘손님’이다. 애초 브라운관 속 음악 프로그램은 방송국 공개홀에 차려진 무대가 전부였다. 7080세대들에겐 익숙한 ‘영 11’ ‘젊음의 행진’ ‘가요 톱 텐’이 TV 음악쇼의 문을 열었다. 연말 각 방송사가 마련한 ‘가요대상’은 한 해의 절정이었다. 90년대 들어 지상파 방송국들이 경쟁적으로 선보인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아이돌 스타들의 출연과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톱 가수들이 차례로 무대외 나와 팬클럽들의 환호성에 답하며 히트곡 1곡을 5분 내로 부르고 내려가는 기존의 방식은 서서히 식상해졌다. 방송국과 가수 사이에 형성된 연예 권력 구도가 변화하면서 톱 가수를 떼로 1시간짜리 프로에 우르르 등장시키는 것도 힘들어졌다. 실력파 가수들은 아예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걸 꺼렸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수요예술무대’ 등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지만 여전히 변방에 머물렀다. 자우림 등 실력파 뮤지션 산실 지상파 식상한 시청자 사로잡아
케이블 음악 프로그램들은 아예 무대를 공연장으로 옮겨 버렸다. 미국 MTV의 인기 프로그램 ‘언플러그드’가 벤치마킹 모델. 1시간 넘게 온전히 한 뮤지션만을 위해 마련된 무대는 방송이라기보단 콘서트에 가깝다. 기존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가수는 소모품이자 5분 남짓 무대를 장식하는 손님일 뿐. 그러나 케이블 라이브 프로그램에서는 가수로부터 PD가 큐시트를 받는다. 공연시간이 길어지면 가수가 아닌, 제작진이 편집으로 걸러야 한다. 뮤지션이 무대에 오른 이상, 그 누구도 공연에 손을 대지 않는다. MTV ‘트루 뮤직 라이브’의 정재윤 PD는 “방송을 타기 힘든 실력파 뮤지션들을 소개시킨다는 측면에서 기존 음악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됐다”고 밝혔다. 히트곡 1곡으로 소개할 수 없는 뮤지션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는 생생한 현장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 게 라이브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KM ‘사운드 플라이트’ MTV ‘트루 뮤직 라이브’에 선 뮤지션들의 면모를 보면 ‘실력파’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임정희, 주석, 린, 델리 스파이스, 자우림, 클래지콰이, 휘성, 거미…. 모두 기존 음악 프로그램을 멀리했던, 이른바 ‘라이브 뮤지션’들이다. 정 PD는 “아직까지는 제작비, 공연장 공간 등의 금전적 제약이 따르는 건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수들의 유료 콘서트에 버금가는 음악 프로그램이 제작될 것”이라며 “프로그램의 브랜드를 내세운 라이브 실황 앨범 출시도 그리 먼 얘기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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