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썩은 상자가 사과도 썩게 만든다"

■ 루시퍼 이펙트 / 필립 짐바르도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br>'교도소 간수-죄수 역할 분담' 실험 결과 공개<br>"인간의 악행은 개인적 성격 아닌 환경의 영향"



독일 영화감독 올리버 히르비겔의 2001년작 '엑스페리먼트(Das Experiment)'는 인간 본성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주제로 했다. 택시운전사, 항공사 직원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 20명을 각각 죄수와 간수로 역할을 설정해 감옥에 배치한다. 심리 실험 자원자인 이들은 단 하루 만에 실험 속 역할 모델에 빠져든다. 간수들은 죄수들의 기를 꺾기 위해 교도소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가혹행위를 자행하고 죄수들은 끊임없이 저항한다. 죄수와 간수들간의 대립이 극으로 치닫다 결국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연구자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는 실험 상황이 영화에서 박진감 넘치게 펼쳐진다. 영화의 소재로 쓰인 이 실험은 책의 저자인 필립 짐바르도가 1971년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란 연구명으로 수행한 실험이다. 영화와 달리 살인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으나 인간 본성에 대한 충격적 결과와 인체 실험에 대한 윤리적 문제로 미국 전역이 시끄러웠다. 스탠퍼드 모의 실험 내용과 결과를 35년 만에 전면적으로 밝힌 이 책은 지난해 출간 직후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짐바르도가 실험을 통해 밝힌 결과는 악행이 개인적 성격의 문제가 아닌 환경의 영향이란 것. 간수와 죄수 역은 균일한 집단에서 임의로 추출했다. 범죄 경력이 있거나 정신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이들은 사전에 실험 대상자에서 제외했다. 피실험자들은 중산층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지극히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이다. 하지만 간수 역을 떠맡은 이들은 차츰 수감자에게 언어 학대, 성 추행 등 가혹 행위을 하기 시작한다. 죄수들로부터 착한 간수로 평가 받은 이들 역시 동료의 가혹행위를 방조할 뿐, 이를 적극적으로 막으려 하지 않는다. 짐바르도는 이와 관련 "문제 있는 개개인 즉, '썩은 사과'가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잘못된 환경 즉, '썩은 상자'가 강력한 영향으로 개인들의 성격을 변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썩은 상자는 어떻게 상자 속 사과들을 오염시키는 걸까? 저자는 집단 동조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이는 인간이 고립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집단 속 타인들과 행동을 같이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 여기에 권위에의 복종, 탈개인화, 익명성 등 복합적 상황이 작용하는 교도소ㆍ군대 같은 조직은 집단 행동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의 연구와 결과를 통해 선량한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는 상황을 설명한 저자는 후반부에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로 시선을 옮긴다. 차곡차곡 포개진 알몸의 이라크 포로들을 배경 삼아 웃고 있는 사진 속 주인공 린디 잉글랜드 일병과 찰스 그레이너 상병, 수감자를 폭행하고 음란 행위를 강요한 칩 프레데릭 하사… 미국 정부는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을 개인의 과오로 축소시켰지만 이는 사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실속 '스탠퍼드 교도소'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듯 영웅적 행위도 지극히 평범하다고 강조한다.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포로 학대 사진을 외부에 공개한 육군 예비군 조 다비처럼 원치 않는 영향력에 저항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저자가 작성한 '악한 상황에 맞서는 10개 프로그램'이 책 말미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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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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