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이젠 '한결같은 팬'으로 거듭날때

지난 12일 새벽. 2006 독일 월드컵 한국팀 첫 경기인 토고전이 열리기 전날. 박세리가 LPGA투어 메이저 경기인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 우승,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지치지 않게, 또 포기하지 않게 날 잡아준 것은 팬들이다.” 또 “잘나갈 때는 몰랐는데 알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지고 보니 한결같이 곁을 지켜주는 그들 때문에 내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팬들이 늘 ‘노력하면 되겠지’ 하고 용기와 여유를 줘 결국 다시 정상에 섰다는 뜻이었다. 약 2주 뒤인 25일. 6월에는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태극 전사들이 돌아왔다. 주장 이운재 선수가 독일에 남기고 온 말처럼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붉은 응원물결이 넘실대던 조국,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하나같이 미안한 기색이다. 2002년 4강 신화를 이뤘기에 좋은 성적을 내고자 더 땀을 흘렸던 그들. 발목이 붓고 피가 흐르기까지 하며 온몸을 던져 원정 월드컵 첫 승리, 강호 프랑스와의 무승부 등 성과를 냈지만 어깨를 당당하게 펴지 못하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섰다. 100만명에 이르는 거리 응원단이 밤새 전국 곳곳에서 자신들을 응원하느라 목 터져라 ‘대~한민국’을 연호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팬들의 기대는 높았고 그들의 의욕도 넘쳤지만 결과가 그에 부응하지 못했다. 심판 판정에 의혹이 있다 하더라도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스위스전을 끝낸 것은 분명 한계를 드러낸 것임을 선수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들 모습에 무조건 우승하기를 바라는 팬들 앞에서 ‘톱10’에 든 것을 자랑하지 못하는 LPGA투어 선수들 모습이 겹쳐졌다. 이제 태극 전사들은 각자의 팀으로 복귀해 또 다른 승부를 펼치게 된다. 대부분 K리그 소속인 그들은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으면 곧 잊어버리는 팬들에게 벌써 섭섭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처음 큰 무대에 나섰다가 실수했던 선수들은 혹시 그 서운함 때문에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다. 그들이 4년 뒤 남아공 월드컵에서 ‘2002년 4강 신화’로 부활하려면 의지를 북돋울 팬들이 필요하다. 100만명에 달한 붉은 응원물결이 단순히 ‘월드컵용’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박세리의 부활을 도왔던 ‘한결같은 팬들’로 거듭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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