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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년 기다린 '우리 생애 최고의 시간'

본머스, 챔피언십 3위와 골득실 19골차… 첫 EPL행 확실

2008년 파산 직전 팬들 십시일반 모금에 '기적의 화답'

사령탑 에디 하우 '닥공 축구'로 친정팀 새 역사 개척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에디 하우(38·잉글랜드) AFC본머스 감독은 서른한 살에 감독생활을 시작했다. 37세에 감독이 된 조제 모리뉴(현 첼시 감독), 33세부터 지휘봉을 잡은 알렉스 퍼거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보다도 훨씬 빨랐다. 무릎 부상 탓에 서른 살에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지난 2008년 말 본머스의 감독이 됐다. 당시 본머스는 4부리그 소속. 2~4부리그를 통틀어 최연소 사령탑이었다.


본머스는 잉글랜드 남부 해안의 작지만 유명한 휴양도시다. 하지만 본머스를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단은 늘 그저 그런 팀이었다. 하우가 입단하던 1994년에는 3부리그, 포츠머스로 이적한 뒤로도 3·4부리그를 전전했다. 2004년 친정으로 돌아와 은퇴할 때까지도 본머스는 3부리그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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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유명 수비수는 아니었던 하우는 갑작스러운 감독 제의를 얼떨결에 받아들인 뒤로 운명이 바뀌었다. 삼류였던 자신과 팀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했다. 2010년 4부에서 3부로 올라선 본머스는 2013년 2부리그까지 진출했다. 1890년 본머스 창단 후 2부 승격은 최초. 그리고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보다 더 거칠다는 2부에서 불과 두 시즌 만에 세계 최고 무대에 부름을 받았다. 본머스는 28일(이하 한국시간) 홈구장인 킹스파크 딘코트에서 열린 챔피언십(2부) 45라운드 경기에서 볼턴을 3대0으로 꺾었다. 승점 87(골 득실 +50)로 2위인 본머스는 1경기를 남기고 3위 미들즈브러(골 득실 +31)와의 승점 차를 3으로 벌렸다. 다음달 2일 찰턴에 19골 차 이상으로 지지만 않으면 최소 2위로 1부리그인 EPL로 승격된다. 창단 125년 만의 첫 EPL 진출이 사실상 확정된 것이다. 하우는 "6~7년 전만 해도 본머스는 빈털터리였다. 그때 팬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우리를 살려냈다"며 "오늘 감사인사를 받아야 하는 쪽은 내가 아니라 팬들이다. 꼬마가 모금함에 동전을 넣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감격해 했다. 본머스는 2008년 재정난으로 파산 직전이었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승점이 깎여 2008-2009시즌 4부리그로 강등됐고 이후로도 빚을 갚지 못해 추가로 승점 17점 페널티를 받았다. 지역민들은 그러나 본머스를 외면하지 않았다. '체리(본머스 애칭)를 지키자(Save the Cherries)'는 캠페인을 통해 십시일반으로 푼돈을 모아 급한 불을 껐다. 그 이후 2011년 러시아 갑부 막심 드민이 구단주로 오면서 본머스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우는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였고 팬들을 사랑하는 감독이다. 현역 시절 그가 포츠머스로 이적하자 팬들은 온라인상에서 모은 수천만원을 내밀며 하우를 다시 데려오라고 구단에 요구하기도 했다. 감독이 돼서는 번리로 떠난 지 2년도 안 돼서 돌아와 기적을 선사했다. 하우는 'EPL에서 감독 제의가 온다면 받아들이겠는가'라는 질문에 "전혀 떠날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감독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고 적정선의 개입으로 팀도 챙기는 지금의 구단주와 끝까지 가고 싶다"는 이유였다. 하우는 구단주와 경기 전 1시간 반 이상 문자를 주고받으며 의견을 교환한다.

구단 측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감독으로서 갖기 쉽지 않은 유연한 자세는 본머스의 운명을 바꾼 원동력으로 꼽힌다. 하우는 과거 사비를 털어 선수들을 위해 스포츠 심리학자를 고용한 일도 있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본머스에 세밀한 패스 위주의 공격 축구를 이식했다. 2012년 본머스 사령탑에 다시 앉은 뒤 리그 100경기에서 50승(26패)을 거두는 동안 168골이 터졌다. 올 시즌도 골 득실 1위는 단연 본머스다. 45경기에서 95골을 퍼부었다. 경기당 2.1골. 하우는 본머스에 입힌 색깔이 브렌던 로저스(현 리버풀 감독)한테 배운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2011년 본머스와 스완지의 2부리그 맞대결 때 하우는 당시 스완지 감독인 로저스를 처음 만났다. 상대 전술에 매료된 하우는 감독 체면도 내려놓고 불과 네 살 많은 로저스에게 '한 수 지도'를 부탁했다. 스완지가 다음 시즌 EPL로 승격한 뒤로도 하우는 로저스의 작은 사무실을 찾아가 배움을 얻었다. 축구철학을 나누며 종일 붙어 지내기도 했다. 본머스는 지난해 말 로저스의 리버풀과 캐피털원컵(1~4부리그 참가) 8강에서 만났다. 리버풀이 3대1로 이겼으나 본머스는 EPL팀들의 숲 속에서 8강까지 헤쳐나가 리버풀을 상대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을 얻었다. 본머스는 EPL 승격으로 인한 수입이 1억8,200만달러(약 1,946억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이 TV 중계권료에 따른 수입이다. 전력 보강을 위한 '실탄'을 두둑이 마련한 셈. '운명을 바꾼 남자' 하우는 EPL마저 뒤흔들 수 있을까.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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