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산업비밀 보호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면서 국정원, 검찰, 대기업을 중심으로 영업비밀 유출에 대한 감시가 날로 강화하고 있다.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산업스파이와 기술유출 사범은 엄벌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당한 전직을 원하는 일부 기술직 연구원들이 무리한 피고소, 검찰의 구속 남발 등으로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첨단기술전쟁에서 영업비밀 보호를 명분으로 지나치게 고급 연구인력의 이동을 제한할 경우, 근로의욕 감퇴는 물론 장기적으로 기업경쟁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검찰 산업기밀 유출수사와 연구원 기술유출 논란을 둘러싼 제도적 문제점 및 대안을 짚어본다. 기술직 연구원들이 전직 등의 과정에서 영업비밀 유출 혐의로 구속된 후 무혐의 종결되거나 검찰이 영업비밀 유출을 입증하지 못해 재판이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적지않아 기소권 남용 논란이 일고 있다. 영업비밀 유출 관련 일부 고소 사건은 연구원이 구속된 후 무죄판결 나거나 고소인의 고소자격 결격이 뒤늦게 밝혀져 법원에서 공소 기각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LCD 칼러필터 기술유출로 LG필립스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뻔 했다며 LG필립스 전 연구원 2명을 구속했지만 1년 가까이 지나도록 유출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재판이 무기한 표류하고 있다. 지난 7월 반도체 핵심기술을 빼내 중국에 공장을 세우려던 하이닉스 전 연구원들은 곧바로 혐의가 인정돼 2개월만에 결심 공판이 끝났다. LCD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의 김한용 부장판사는 “검찰측이 기술유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은 채 기소해 재판을 속행하기 힘든 상태다“며 “특허청에 무엇이 영업비밀에 해당될 수 있는지 특정해 달라고 주문해 놓은 상태다“고 말했다. 당시 이들 연구원을 기소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의 이득홍 부장검사(현재 수원지검 특수부장)는 이에 대해 “기소 후 자리를 옮겨 사건 진행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만 밝혔다. 지난 2002년 삼성전자가 자사의 휴대폰 성능체크 항목 유출에 공모했다며 양모 벨웨이브 대표를 고소, 검찰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경법) 위반으로 양씨를 구속시켰지만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같은 해 인테크텔레콤 등 벤처업체가 천우통신연구원(천우)을 상대로 PDA 핵심기술을 빼돌렸다며 형사고소해 검찰이 천우 대표 및 연구소장을 구속했지만 법원에서 고소인 자격결격으로 공소기각됐다. 모 대형로펌에서 지적재산권 전문인 A 변호사는 “대기업 등이 자사 연구원의 전직을 막기위해 영업비밀 유출 사실이 없는데도 전직 연구원을 형사적으로 옭아매려는 경향이 있다“며 “검찰도 산업기밀 보호라는 명분 하에 대기업의 고소가 들어오면 충분한 내사 없이 일단 해당 연구원에 대한 구속 및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03년 휴대폰 기술 유출을 놓고 LG전자가 팬택 연구원(전 LG전자 연구원) 4명을 형사고소한 사건은 검찰이 이들 연구원 집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영업비밀 증거 자체가 없어 무혐의 종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