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숯내에서 쓴 여름날의 편지 (한동화 지음, 나남 펴냄)
난 랭보를 외웠어요/ 초여름 저녁의 푸근함에 젖어/ 보리밭 이랑을 걸었지요./ 깜부기를 꺾어/ 얼굴에 비비기도 했고요./ 말도 하지 않고/ 생각도 없이/ 소년시절은 흘러갔어요./하지만, 난 랭보를 외웠어요.('난 랭보를 외웠어요'전문)
전 언론인 출신의 시인 한동화(본명 한택수)가 세번째 개인 시집을 내놓았다. 시인은 "정년퇴직 후 오직 시만 생각하며 지낸다. 읽고 쓰고 하다 보니 밀린 숙제가 많았다는 점을 느낀다" 고 시에 몰두하고 있는 근황을 전한다. '숯내에서 쓴 여름날의 편지'는 10행 안팎의 짧은 시 72편으로 채워졌다. 시인은 "작품 전체를 한편의 편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작품 대부분이 낮은 톤과 경어체로 돼 있는 것도 이를 반영한다. 세월과 함께/ 냇물이 흘러요./ 한때 거짓과 환영이 아른거렸던 젊은 날들은 가고/ 작은 물줄기,/ 시냇물이 흘러요.('세월과 함께'전문)
전원에서 일상을 보내는 시인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서정으로 충만해 있는 듯하다. 기도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먼 그리움을 고백할 수 있을까요./ 내가 갖고 싶은 건/ 듣고 싶은 건/ 한줄의 시,/ 바람에 쓸리며 붙어있는/ 푸르른 날을 기억하는/ 잎사귀의 언어,/ 내 몸에 가까이 붙어 있어서/ 떨치고 싶던 욕망,/ 햇볕을 받던 욕망을 뒤로 하고/ 기도하면서/ 시를 써요.('기도하면서'전문)
시인이 이번 시집은 동시(童詩)에서 본격적인 시쓰기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같은 작품들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직장 생활에서 풀려나 동시부터 다시 읽고 쓰고는 했다"는 시인은 지난해 동시집 '머리가 해만큼 커졌어요'을 냈다. 시인은 1985년 '심상'으로 등단한 후 '폭우와 어둠 저 너머 시''그리고 나는 갈색의 시를 썼다' 등의 시집을 통해 꾸준히 자신의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