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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를 구호로 내걸었던 일본 민주당 정권의 몰락과 자민당의 재집권으로 일본은 민주당이 추구한 '복지'에서 자민당이 정통한 '토건'으로 경제의 중심축을 되돌리게 됐다. 일본의 '잃어버린 국민소득 50조엔'을 되찾기 위해 돈을 찍어내 토목ㆍ건설 사업에 거액을 쏟아 붓는 것이 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정책, 즉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다. 아베 정권하의 일본경제는 장기침체 극복이냐, 과거 자민당이 초래한 '잃어버린 20년'의 반복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아베 정권하의 일본 경제정책 방향은 향후 10년간 200조엔을 사회간접자본 등 공공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아베의 '국토강인화' 공약과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 예고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오는 26일 출범하는 아베 정권은 내년 1월 중 인프라 사업을 위한 5조~10조엔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고 재원조달을 위해 추가 국채발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베 자민당 총재는 지난 17일 향후 정국구상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기 위한 대규모 추경예산안을 편성해야 한다"며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미래에 투자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밝혀 민주당 정권에서 급감한 공공사업이 앞으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과거 자민당이 주력한 토건정책은 일본 고도성장의 엔진이 된 동시에 일본경제의 버블 형성과 재정부실화의 근원이자 정경유착의 온상으로서 극심한 지탄의 대상이 됐다. 특히 1990년대 들어 경제의 거품이 꺼진 뒤에도 자민당 정권이 막대한 재정을 끌어다 대규모 공공사업에 투입한 결과 일본은 경제를 되살리기는커녕 국내총생산(GDP)의 237%까지 부풀어오른 막대한 국가부채에 짓눌려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됐다. 2000년대 들어 자민-공명 연립정부가 공공사업비를 조금씩 줄인 데 이어 2009년 민주당이 집권하자 일본의 공공사업비는 눈에 띄게 급감했다. 올 회계연도 예산에서 공공사업비는 1998년의 약 3분의1 수준인 5조1,000억원으로 책정돼 있다.
일본경제의 거품 형성과 재정악화의 근원으로 지목된 토건사업이 재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의 동일본 대지진 이후다. 재해 복구와 방재를 위한 인프라 수요가 늘어나면서 일본은 다시 대규모 공공사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달 초 총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1977년에 개통된 야마나시현 사사고 터널이 노후화로 붕괴되면서 여러 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며 아베 총재의 대규모 토건정책에 부쩍 힘이 실리게 됐다. 사고예방을 위해 완공 30~40년이 넘는 터널ㆍ교량ㆍ공항 등 낡은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UFJ모건스탠리증권의 시카노 다쓰시 이코노미스트는 "터널 붕괴사고는 노후한 인프라에 대한 아찔한 경고로 받아들여졌다"며 "어느 정도의 공공사업 지출증대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시적인 경기부양과 지방의 표심끌기 효과를 노린 1990년대의 무분별한 토건사업 투자 재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새 정부의 2012년도 추경 및 2013년도 예산안이 '돈 뿌리기' 양상을 보일 경우 재정난에 대한 우려로 채권시장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JP모건체이스의 자산리서치 담당인 제스퍼 콜은 "인프라 지출을 늘리는 것 만으로는 어떤 목표도 달성할 수 없다"며 "선심성 지역개발 사업과 돈 찍어내기, 대규모 재정지출에 의존한다면 일본은 (10여년 전 재정이 붕괴된) 21세기판 아르헨티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