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윗목은 이미 장기불황

연성주 생활산업부장

최근 국내경기를 둘러싸고 장기불황 논란이 시끄럽다. TV와 신문지상에서는 연일 전문가 토론이나 경제연구소 보고서 등을 통해 ‘우리 경제가 장기불황에 진입했다, 아니다’ 하는 논쟁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 경기가 머지않아 살아나리라는 낙관론이 다소 우세했으나 점차 비관론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분위기다. 하반기부터 수출증가세가 한풀 꺾일 것이라는 전망까지 가세하면서 연내에는 경기회복을 기대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경기흐름을 누구보다 가장 잘 꿰뚫어보는 유통업체 사람들은 장기불황 논란에 시큰둥하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우리 경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장기불황에 빠져들었는데 새삼스럽게 웬 야단이냐는 것이다. 국내 소매업은 지난해 1ㆍ4분기 이래 6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내구재인 자동차 판매는 올 상반기 중 지난해보다 무려 25%나 줄었다. 백화점 매출은 지난 2002년 12월을 기점으로 내리막 행진을 시작해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지방 경기는 더욱 어렵다. 외환위기 때보다 매출이 줄면서 권리금은 고사하고 계약기간 전에 떠나는 영세상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만하면 장기불황의 요건을 모두 갖췄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나빠져야 하느냐는 주장이다. 기업은 속성상 이익감소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쉽게 극복되지만 매출감소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이기에 최근 내수침체를 과거의 어떤 불황보다 어려운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경제학적으로 장기불황은 구조적 문제점이 누적된 상태에서 외부의 쇼크가 가해져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악순환에 빠져들며 발생한다. 그래서 장기불황의 배후에는 늘 누적된 구조적인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장기불황은 원인에 따라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우리나라는 소비부진으로 야기된 내수불황이다. 내수불황은 다양한 종류의 불황 중 가장 치유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내수불황의 원인을 손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는 중산층의 가처분소득 감소다. 중산층은 은행대출 이자와 교육비ㆍ주거비 부담으로 여윳돈이 거의 없으며 또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고용불안 때문에 지갑을 마음대로 열지 못한다. 우리 국민들이 올 1ㆍ4분기 중 빚 갚는 데 쓴 돈이 무려 가계소득의 4분의1이나 됐다는 통계청 조사에서 보듯이 대다수 서민들은 빚에 쪼들리고 있다. 둘째, 깊어가는 경제의 양극화다. 우리 경제는 수출과 내수, IT와 비IT,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 등 4대 양극화에 직면해 있다. 즉 일부 기업은 사상최대의 흑자를 올리며 호황을 누리는 반면 상당수 기업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넘기고 있다. 이 같은 양극화는 마치 우리 경제의 체질이 양호한 것 같은 환상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셋째, 400만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도 아킬레스건이다. 정부가 현재 신불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드뱅크를 운영하고 있으나 3개월 동안 고작 7만여명만 대부승인을 받아 거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신불자들에게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정부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으로 고용증대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방한했던 고바야시 요타로 후지제록스 회장은 한국이 내수침체에서 벗어나려면 정부ㆍ기업ㆍ시민단체 등이 힘을 합쳐 문제 있는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내수시장이 작더라도 내수비중이 높은 부문에 설비투자를 할 때 정부가 적극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각종 징후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미 장기불황에 접어들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불황이 일본식으로 10년이 될지, 아니면 5년 이내에 끝날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고바야시 회장의 조언대로 모든 경제주체들이 위기를 인식하고 힘을 합하면 장기불황은 단기에 극복될 수 있다. 윗목에는 찬바람이 쌩쌩 불어 이미 장기불황에 한발을 들여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은 조금이라도 따스한 기운이 남아 있는 아랫목에서는 불황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 자체가 소모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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