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로드가 열린다] ③ 글로벌 한류 장수전략은 '산업화'
스타 육성 ·외부 투자 유치 등 안정적 시스템 만들어야 '롱런'
조상인기자 ccsi@sed.co.kr
SM·JYP 등 '인큐베이팅 체계' 구축… 연예기획 부문은 '하이 리스크' 줄여"아시아의 별 보아는 30억 프로젝트" 상장 통한 꾸준한 자본유입 구조 절실"음식·의류 등 파생상품 경제효과 커" 사업 다각화로 캐시카우 확보 노력도
한때 누아르를 내세운 홍콩 영화가 아시아 전역을 달궜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1980년대 국내에서 전성기를 누린 홍콩 스타의 인기는 장궈룽, 저우룬파, 청룽(재키 챈), 류더화, 왕쭈셴 등이 방한해 TV 프로그램과 CF를 장악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의 인기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급속도로 사그라졌다. 원인은 영화의 질을 고려하지 않은 과다 생산, 특정 장르에만 편중한 소재 개발의 부족, 2세대 스타를 발굴하지 못한 한계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한동안 한류(韓流)에 대해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홍콩스타' 같은 10년 남짓의 '반짝' 유행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문화로 글로벌 한류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산업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이 리스크? 시스템으로 헤지!=한류 콘텐츠 공급자는 연예기획사다. 국내 연예기획사는 '매니저-아티스트'로 이뤄지는 단순한 구조에 전문성과 체계적인 조직력은 부족한 주먹구구식 영세 업체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엔터테인먼트업계는 여타 제조업 분야가 체계적인 연구개발(R&D) 과정을 거쳐 실패 요인을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과 달리 주관성과 불확실 요소가 크게 개입하는 고위험(high risk) 사업군에 속한다. 반면 배용준의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처럼 '터지면 대박'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즉 고위험 고수익군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연예 콘텐츠 산업의 안착을 위해서는 '리스크 헤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2000년대 아시아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한류 바람과 함께 연예기획사의 기업화가 시작됐다. 2000년 4월 코스닥에 상장한 SM엔테인먼트는 가장 큰 리스크인 불확실성을 타개하기 위해 '시스템'을 구축했다. 어린 나이에 캐스팅돼 연습생으로서 교육ㆍ훈련기간을 거쳐 데뷔하는 이른바 '인큐베이팅 시스템'이다. 보아ㆍ동방신기ㆍ소녀시대 등을 배출한 SM의 경우 ▦신인을 발굴하고 트레이닝해 데뷔를 준비하는 신인개발팀 ▦아티스트에게 적합한 곡을 수집, 선정하는 A&R(artist & Repatoire)팀 ▦의상부터 헤어스타일과 음반 재킷 디자인까지 관리하는 비주얼디렉팅팀 ▦데뷔 후 아티스트의 전반적인 활동계획 기획 및 진행을 총괄하는 매니지먼트팀 ▦홍보팀과는 별도로 유튜브의 SM 채널을 관리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를 책임지는 뉴미디어팀 등이 유기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기획자 겸 매니저가 혼자만의 판단으로 상황별로 운용, 대처하던 것을 체계화해 조직이 관리하고 대체ㆍ보완 가능한 시스템으로 구축한 '스타 생산 라인'을 마련한 셈이다.
가수 비를 키워낸 JYP엔터테인먼트 역시 시스템 구축이 안정화에 접어든 기업으로 해외 진출 성공의 노하우를 발판 삼아 2AM과 2PM, 원더걸스와 미스에이 등을 선보였다. JYP의 정욱 대표는 "K팝은 10여 년간 시스템을 통해 인재를 육성했다는 강점이 있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ㆍ일본이 위기감을 느껴 지금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시스템을 만들고 시장에 진입하는 데 수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용준의 소속사로 유명한 키이스트는 일본 진출의 경험과 현지 네트워크에 기반한 해외 진출 시스템을 통해 김현중ㆍ주지훈ㆍ김수현ㆍ이지아 등 차세대 한류스타를 프로모션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 위한 안정적인 자본 공급 필요=최근 한류 스타들은 노래부터 연기까지, 공연기획자ㆍ패셔니스타ㆍ일러스트레이터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산하는 '트랜스포머 엔터테이너'로 진화하는 추세다. 다양한 분야의 재능을 연마하려면 그만큼 준비기간이 길어진다. 타고난 재능이 아무리 탁월하더라도 다양한 매체 접근성이 있으며 기대치가 상승해 있는 요즘 문화 소비자의 취향에 호소하려면 더 완벽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2AM의 조권이 8년,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는 소녀시대의 제시카가 7년의 연습생 시절을 거친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장기 투자를 하려면 당연히 비용문제가 뒤따른다. 가능성 있는 신인을 찾아내 데뷔시키기까지 트레이닝 및 수업, 숙소 제공, 신곡 수집 등 100%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SM은 연간 R&D 비용으로만 20억~40억원을 쓰는 것으로 추산된다. 요즘처럼 해외활동까지 고려할 경우 투자비용은 더욱 높아진다. 13세에 데뷔해 '아시아의 별'이 된 가수 보아를 두고 SM의 이수만 프로듀서는 "30억원 프로젝트였다"고 밝혔다.
지속 가능한 한류 콘텐츠 산업화를 위해서는 엔터테인먼트업체의 자생력 확보와 함께 금융자본 유입과 적극적인 외부 투자가 절실하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최근 상장 기업의 증가는 회계 투명성 확보로 자본 유입과 수익 창출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여건을 마련했다.
아울러 엔터테인먼트업계는 안정적인 수익 확보를 위해 고유의 매니지먼트 업무 이외의 사업 다각화를 모색한 '캐시카우'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화 콘텐츠에서 파생된 음식ㆍ의류 등의 상품이 콘텐츠 자체보다 더 큰 경제효과를 내는 만큼 다각화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류 배우를 다수 확보한 제작사 iHQ는 식음료 사업인 '카페베네'로 신규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 키이스트는 2009년 말부터 일본에서 DATV라는 유료채널사업을 병행해 고정 수입원을 확보하고 있다. 자사 아티스트의 독점 영상을 방영하는 이 채널은 월 이용료가 2,500엔임에도 가입자가 3만명을 넘어섰다.
신필순 키이스트 대표는 "외부 자본을 유치하려면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트랙레코드(track record)가 중요한데 이미 기업화를 이룬 업체 외에는 자료가 없어 정부나 투자회사의 '보증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며 "가령 영화산업의 경우 모든 조건이 완벽해도 흥행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듯 이성적ㆍ논리적 판단보다는 확률의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윤호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정책연구팀장은 "정부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콘텐츠 산업 분야의 리스크를 보장해 안정성과 기회를 마련해줘야 지속 가능한 산업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며 "잠재 가능성과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투자가 가능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