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동양과 오리온의 얄궂은 운명


지난달 30일 저녁 기자가 찾은 서울 성북동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자택은 적막감이 흘렀다. 가끔 지나가는 행인만 눈에 띌 뿐 쥐 죽은 듯 조용한 정경이 현재의 동양그룹 위기상황을 보여주는 듯했다. 자택은 밖에서는 내부를 전혀 볼 수 없는 구조로 설계돼 있었는데 계단 위 높은 축대 위에 설치된 경비실만 불을 밝힌 채 외부인을 반기고 있었다.

결국 자택 앞 차고가 외부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다. 몇 시간을 기다려도 회사 차량으로 추정되는 차 1~2대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차고 앞에 있는 초인종을 눌러 대화를 시도했다. 혹시나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회장님은 안 계십니다".


그럴 줄 알았지만 6시간가량의 현 회장 자택 방문은 허탈했다. 사실 기자는 "주요 계열사들이 법정관리ㆍ워크아웃 등 회사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보니 현 회장은 당분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동양 측 설명을 이미 들었다.

발길을 돌리려니 바로 담 하나 사이를 두고 위치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자택이 눈에 들어왔다. 현 회장하고는 동서지간으로 말만 담일 뿐이지 편한 추리닝 옷에 슬리퍼를 신고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붙어 있었다. '이렇게 가깝게 붙어 있었네'라고 깜짝 놀랄 정도다.


현 회장과 담 회장은 동양그룹 사태가 나기 전까지 서로 우애 좋게 지냈다고 한다.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양구 회장의 부인인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의 건재도 우애 유지에 한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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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회장과 담 회장이 동양그룹 지원 문제로 논의를 주고받았을 때 사태가 이렇게까지 진행될지 예측하지 못했다. 현 회장은 담 회장에게 '모든 조건을 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담 회장은 이에 대해 정에 이끌리지 않고 경영권 안정이라는 실리를 택했다.

현 회장과 담 회장 자택 사이에 자리를 잡은 것은 그냥 담이 아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두 그룹을 갈라놓은 철책처럼 보였다. 위기에 처한 동양그룹과 이 모습을 담 너머 관망할 수밖에 없는 오리온그룹의 운명이 얄궂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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