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재정위기와 그리스 사태로 크게 흔들렸던 '하나의 유럽'이 난민 문제로 또다시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역 내 단일통화인 유로화 도입과정에서 이미 경제적 통합의 한계를 절감했던 유럽은 이번에 난민수용 문제를 놓고 동서 갈등이 고조되며 정치적으로도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8월3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난민 사태에 대해 책임을 떠넘기며 날 선 비판을 퍼붓고 있다.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럽 국가들이 난민수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거듭 강조하며 "동유럽 국가들이 무슬림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난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도 "동유럽의 많은 국가가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며 "이는 유럽의 정신에 위반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자국에 도착한 난민들이 독일 등 서유럽으로 이동하도록 방치한 헝가리는 집중포화의 대상이 됐다. 시리아 난민 수천명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역사 주변에서 수일간 체류했지만 헝가리는 이들을 방치해 열차를 타고 서유럽으로 이동하도록 했다. 지난 1990년 제정돼 유럽 난민정책의 근간이 돼온 더블린조약에 따르면 유럽에 들어오는 난민은 처음 발을 디딘 국가에서 책임지도록 돼 있지만 헝가리의 이번 조치는 이 조약을 파기한 셈이다. 이에 오스트리아 경찰은 즉각 "국경에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난민은 바로 헝가리로 되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독일 역시 "헝가리에 있던 난민들은 헝가리에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오히려 서유럽 국가들에 책임을 떠넘겼다. 헝가리 당국은 "칼레항에 장벽을 쌓고 있는 프랑스가 우리를 비난하다니 이상하고 야비한 일"이라고 맞받아쳤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도 "난민수용을 분담하는 시스템에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난민 대부분은 경제적 이유로 넘어오기 때문에 본국에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은 출범 당시 서로 국경을 허물어 자유로운 왕래와 교류를 보장하는 솅겐조약을 체결했지만 최근 난민 문제로 갈등이 커지자 각국은 국경 경비를 강화하는 등 조약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아울러 자국의 이익과 정권 유지를 우선시하는 각국 정부와 정치권은 유럽 공동의 문제에 대해 인색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난민 문제 외에 하나의 유럽을 위협하는 요인들은 산재해 있다. 6월 EU 탈퇴 국민투표 시행 법안을 통과시킨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Brexit)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민정책과 EU 분담금 문제로 줄곧 EU와 대립각을 세워온 영국 보수당 정부는 오는 2017년까지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못 박았다. 좌파 정권이 득세하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도 EU에 반기를 들었다. 10월로 예정된 포르투갈 총선에서 승리가 예상되는 사회당은 긴축 반대, 세금 감면을 내세우며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EU 채권단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당이 집권하면 채권단과의 갈등이 불가피하고 이로 인해 구제금융이 끊길 경우 포렉시트(포르투갈의 유로존 탈퇴·Poreix)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