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6월 10일] 말만 앞세운 '수주 비리 근절'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해주세요." 지난 5월 말 한국주택협회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주택산업 선진화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협회는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을 수주할 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등의 불법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불법행위 근절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묻자 협회의 한 관계자는 "당장 실천 계획을 마련하지는 못했다"면서도 "앞으로 각 건설사가 자정 활동을 펼칠 예정인 만큼 차차 사정이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협회의 기대와 현실은 여전히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달 초 직접 찾은 서울 성동구 성수지구의 한 추진위원회 사무실 출입구에는 '건설회사 관계자들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인쇄물이 붙어 있었다. 이 추진위의 위원장은 "음료수나 휴지 등을 들고 각 가정을 직접 방문해 홍보활동을 펼치는 건설사 영업사원 때문에 정상적 조합 활동이 힘들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공공관리제가 시행되고 있는 성수지구는 각 조합별로 사업시행 인가가 이뤄진 이후에야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위원회 사무실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건설사들이 임시총회 개최를 축하한다며 보내온 화분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재개발ㆍ재건축 수주전에서 각종 금품이나 향응 제공이 문제가 된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시공사 선정을 앞둔 재정비 사업장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버스를 몇 대씩 대절한 '투어'가 열리고 억대가 넘는 연봉을 받으며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재개발ㆍ재건축 조합장도 적지 않다. 이 모든 비용은 일단 건설사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가 결국은 각 조합원의 부담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몇 달 전 기자와 만난 한 중견건설 업체 사장은 "큰 뜻을 품고 일류 대학을 나온 신입사원들이 재개발 수주전에서 영업하는 모습을 보면 참담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협회가 뒤늦게 결의문을 채택한 데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자기반성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천이 없는 결의나 선언은 보여주기 위한 '쇼'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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