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펌프로 물을 퍼올리기 위해서는 `마중물`이라는 게 필요하다. 펌프 윗구멍에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이다. 이것이 없으면 땅 밑에 제 아무리 많은 양의 물이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한 방울의 물도 끌어올리지 못한 채 빈 펌프질만 하게 될 뿐이다.
지금 우리 경제ㆍ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게 바로 마중물이다. 단순히 경제적 의미의 자극제가 아니라 `그래도 잘될 수 있다`는 희망이 그것이다. 지금은 혼돈과 좌절의 시기다. 정치적으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헷갈리는 상황에서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입장이고, 경제적으로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걱정에 휩싸이고 있다. 그 와중에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는 절망감도 깊어지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태 속에 보수와 진보로 패가 갈리고 있다지만 이는 단지 일부의 사람들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 속에서 좌절을 느낄 뿐이다.
이들의 두려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 나라가 제대로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또다시 경제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다행히도 주식시장의 동요는 예상보다 빨리 안정을 되찾고 있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12일 종합주가지수가 21포인트나 크게 떨어졌지만 15일에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추가 급락세가 멈췄다. 원ㆍ달러 환율 등 다른 금융시장도 비교적 차분한 움직임을 보였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싹튼다고 했던가. 그래서 과거의 절망을 자전거의 앞바퀴에, 미래의 희망을 뒷바퀴에 비유하는지도 모른다. 뒷바퀴는 앞바퀴가 굴러가는 쪽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만큼 절망의 고통이 지나가면 희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경제에 대한 우려, 희망보다는 좌절, 기쁨보다는 근심에 지배당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런 말들은 사치스러운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우리 경제ㆍ사회는 실제 이상의 무력감에 갈수록 힘을 잃어갈 가능성이 높다. 15일에도 외국인은 매도로 일관, 언제 다시 주식시장이 하락 쪽으로 방향을 틀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불안한 안정이다.
이 위기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희망을 퍼올릴 수 있는 마중물이 필요하다. 그것은 깊은 반성일 수도 있고 정치ㆍ경제ㆍ사회시스템에 대한 정화일 수도 있다. 그것을 찾는 일은 우리 사회를 혼돈 속에 빠져들게 한 정치ㆍ경제 지도자들의 몫이요, 책임이다.
<이용택 증권부차장 yt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