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구닥다리 부과기준이 부른 '자동차세 역진성'

1억짜리 자동차가 1000만원대 자동차보다 세금 덜 낸다는데…

단순 배기량으로 부과… 기술발전 따라가지 못해

선진국처럼 차 가격·마력 등 보완기준 마련해야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A씨(45)는 최근 자동차세 고지서를 받아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차 가격이 2억원에 육박하는 BMW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i8'보다 두 번째 차로 이용하는 1,000만원대 현대자동차의 준중형차 '아반떼'의 세금이 더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 구입한 i8은 배기량 1,499㏄ 기준으로 6만7,820원이 부과됐다. 같은 달 산 아반떼는 배기량 1,591㏄ 기준으로 7만1,990원을 내야 했다. 차 가격은 10배 더 비싼데 자동차세는 오히려 4,000원 더 싼 것이다.


자동차세 부과방식이 기술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가격이 10배나 비싼 차가 세금을 덜 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세의 역진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배기량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인데 앞으로 이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터보 기술…친환경차에 세금 역전=지방세법 127조에 따르면 자동차세는 배기량에 따라 부과된다. 비영업 승용차 기준으로 1,000㏄ 이하는 ㏄당 80원, 1,600㏄ 이하는 140원, 1,600㏄ 초과는 200원이다. 여기에 차량 연식에 따라 일정 부분을 깎아준다. 과거에는 '고배기량 차=비싼 차'라는 공식이 성립했다. 배기량 3,000㏄ 차가 2,000㏄ 차보다 더 큰 힘을 내고 차 가격도 더 비쌌다.

하지만 최근 기술발전에 따라 이 공식이 깨지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한규제 때문에 전 세계 제조업체들은 엔진을 줄이면서 힘은 더 내는 '터보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실제 현대차가 최근 내놓은 '쏘나타 1.6 터보' 모델은 배기량이 1,591㏄로 기존 준중형급으로 배기량이 적어졌다. 그러나 출력은 180마력으로 기존 1,999㏄(168마력) 모델보다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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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고급기술을 사용한 차일수록 더 두드러진다. 최신 엔진인 PHEV는 엔진과 전기모터를 함께 사용해 힘을 낸다. 같은 힘을 내더라도 전기모터 덕에 배기량이 적은 엔진을 사용해도 된다. 포르셰의 PHEV 억대 차량 '카이엔S 하이브리드'는 무려 416마력의 힘을 내지만 자동차세는 1,000만원대 차량과 같거나 적게 내고 있다.

전기차도 상황은 비슷하다. 내연기관을 이용하는 자동차와 달리 모터만 사용하는 순수 전기차는 현행 자동차세 부과기준으로 보면 과세표준이 없다. 정부는 순수 승용전기차에 대해서는 지방교육세를 포함해 연 13만원을 일괄 부과하고 있다.

차 가격이 5,000만원이 넘는 전기차 BMW의 'i3'나 4,000만원대 기아차 '쏘울 EV'가 같은 세금을 내는 것이다. 1,000만원대 초반 경차(999㏄·10만3,890원)와도 비슷한 보유세를 내고 있다.

◇차 가격·마력 등 보완기준 마련해야=단순히 배기량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는 것은 보유한 재산 가치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재산세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의 경우 매년 정부의 공시지가 기준에 따라 재산세를 부과한다. 실제 자산 가치를 평가해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 등 선진국처럼 차량 가격을 평가해 자동차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차량 성능의 기준이 배기량에서 마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서 마력도 좋은 참고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 만들어진 제도가 최근 자동차 기술 발전을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다운사이징된 수입차 판매량 증가에 따라 자동차세에 대한 제대로 된 과세를 통해서도 추가 세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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