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13> 숫자는 정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어제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는 앞으로 할 일이 많은 오바마 정부에 큰 충격을 안긴 것 같습니다. 5일(현지시간) 오전 10시 중간집계에 따르면 야당인 공화당은 최소 하원에서 242석, 상원에서 52석을 확보하면서 과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민주당지지 지역이었던 7곳도 공화당으로 마음을 돌려 향후 미국의 정국이 어떤 방향으로 진전될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참패에 가깝습니다. 언론에서는 오바마 정부의 레임덕이 가시화될지도 모른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이 수치를 두고 ‘위기’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숫자가 실제 사회에서 어떤 영향력을 지닌 수단으로 작동하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숫자 중 하나가 기업의 회계 정보입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법인은 회사규모와 관계없이 공시할 의무가 있고, 직전 사업연도 말 자산총액이 100억원 이상인 주식회사 및 직전 사업연도 말 부채총액과 자산총액이 모두 70억이 넘는 주식회사이거나 종업원이 300명 이상이고 자산총액이 70억 이상인 주식회사도 공시 대상입니다. 외부 감사 법인에 의해 적정성 여부를 판정받게 되어 있죠. 그러나 이것조차도 기업의 사정과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정보의 표현 방식을 달리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거짓 정보로 분식회계를 하는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기업은 다양한 목적을 위해 숫자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세금을 줄이거나 주가를 관리하기 위해 부채 처리, 비용 처리, 자산 처리 등의 다양한 계정 전입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회계는 ‘판단’을 전제로 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정확하더라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기업의 재무제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업 공시정보가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해서는 안 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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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의 심리적이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정면돌파’를 감행한 사람들이 역사 속에 존재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대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입니다. 포에니 전쟁 당시 한니발 장군이 이끄는 카르타고 군이 이탈리아 전역을 휩쓸자 로마인들은 계속되는 패전과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한니발의 ‘20만 대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로마군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22세의 젊은 정치인이었던 스키피오는 적을 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책은 적은 수의 결사대로 스페인에 있는 본거지를 쳐서 ‘숫자의 신화’를 깨는 수밖에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코끼리와 북방 기병으로 무장한 한니발 군대는 이탈리아를 휘젓고 다니면서 숫자가 점점 불어나 있었고, 이탈리아 전제가 카르타고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라는 공포심을 줬습니다. 반면 스키피오는 숫자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맥락과 환경에서 작동하는지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연전연승의 장군이었던 그는 4,000 명의 부대로 2만 명이 지키는 성을 공략하거나, 2만여 군사로 3만-4만 명을 상대하는 등의 효과적인 전술에 능했습니다. 판세가 바뀌면 숫자의 힘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던 그는 수치 정보보다도 그 자료를 생산하는 사람의 의도, 파급효과 등을 알고 그 기반을 뒤흔들 방법을 찾았던 것입니다.

의사결정에서 지식과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은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돕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숫자는 우리의 합리적인 판단을 왜곡하는 자료로도 오용될 위험이 있습니다. 중간선거 참패로 고심하고 있을 오바마 미국대통령에게 필요한 돌파구는 어쩌면 ‘숫자가 주는 압박’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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