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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에 잘 되는 작품만 잘 되는 이른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립극단ㆍ명동예술극장 등 국고 지원을 받아 안정적 제작이 가능한 공연단체에서 제작한 작품이나 일부 자금력이 탄탄한 기획사 작품을 제외하고는 객석을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잘 되는 작품에는 이유가 있다(?)= 올 들어 눈에 띄는 흥행작은 작품성과 배우 인지도가 시너지를 낸 경우가 많다. 특히 매진 기록을 세우는 작품들이 잇따르면서 연극 시장 부활에 기대감을 품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매진 행렬은 이선균, 전혜진 부부와 이상우 연출의 만남으로 주목 받은 '러브 러브 러브'부터 시작됐다. 작품은 1960년대부터 40여년간 두 연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많은 뒷이야기를 남겨 흥행과 호평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푸르른 날에'는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폐막(6월 2일) 일주일을 앞둔 지난 24일 모든 회차가 매진됐다. 공연이 오른 남산예술센터 좌석은 총 274석으로 적지 않은데도 티켓을 미처 구하지 못한 관객들이 보조석을 확보하려고 매표소에서 대기표를 받아 기다리는 진풍경까지 연출됐던 것. 기획사인 신시컴퍼니 최승희 팀장은 "고선웅 작가 겸 연출가가 각색해 촌철살인의 입담과 리듬감 넘치는 작품으로 탄생한 만큼 작품성뿐만 아니라 관객 흡입력도 강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92석)에서 지난 10~26일까지 공연했던 '채권자들' 또한 객석점유율 120%를 넘으며 20여명의 관객들이 보조석을 이용했다.
국립극단이 선보이는 작품들도 재단법인 출범(2011년)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관객층을 넓히며 대중성까지 확보하고 있다. 올 상반기 객석점유율(유ㆍ무료 포함)은 3월의 눈(105%), 푸른 배이야기(114%), 안티고네(108%), 칼집 속에 아버지(112%), 소년이 그랬다(115%) 등으로 화려한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유료객석점유율도 평균 80.4%로 2011년(46%), 2012년(53%)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를 기록, 수익성도 좋아졌다.
◇10중 9곳은 객석 절반도 못 채워=국립공연단체나 일부 대형 기획사에서 만든 작품은 흥행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지만 자본력이 딸리는 대부분의 연극은 관객들로부터 외면 받는 게 현실이다. 대학로에서 약 150편 이상의 연극이 공연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손익분기점을 넘는 곳은 10%도 안 된다는 게 공연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로봇을 향한 동경과 로봇 자신이 되고 싶은 간절함을 적절하게 버무려내 작품성에선 호평을 받은 '병신3단로봇'은 자금 문제로 공연장 대관에 어려움을 겪었다. 어렵사리 소극장을 구해 2주 남짓 기간 동안 공연한 후 최근 막을 내렸지만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작 영화나 유행을 등에 업고 무대에 오른 작품에 대해서도 관객들은 화답하지 않았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원작 영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연극에선 재미를 보지 못했고, 김수로가 프로듀서를 맡은 '유럽블로그'도 기대에 못 미친 성적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요즘처럼 사는 게 팍팍한 때는 심각한 화두를 던지는 정극보다는 한 번 보고 웃고 마는 코믹 작품에 관객들이 몰리는 것 같다"며 "자본력이 열악한 기획사들이 작품성 있는 공연 보다는 당장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가벼운 작품에 몰입하지만 시장에서 외면 받으면서 악순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2010년 전후로 공공극장(명동예술극장, 남산예술센터, 국립극단)의 제작 물량이 많아지면서 관객 쏠림 현상이 강화되는 것 같다"며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역할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