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발목잡힌 게임산업] <하> 옥죄기보다 자율 규제가 해법

게임 규제는 한국이 유일… 과몰입 예방 교육이 먼저<br>같은 제도 두개 부처서 관리 정책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br>폭력성과 게임 상관관계 과학적 연구로 증명 필요<br>게임문화 조성·상담 지원 등 업계도 사회적 역할 늘려야


"게임산업 성장의 열매를 가장 많이 가져간 곳은 넥슨과 엔씨소프트, 네오위즈 등 대형 게임업체 대표들입니다. 뒤에 숨어서 애꿎은 실무자만 전면에 내세우지 말고 직접 나와서 토론을 합시다."(새누리당 신의진 의원)

"겉으로는 육성을 외치면서 실제로 규제의 칼을 꺼내는 것은 '꼰대적 발상'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대로 게임산업을 대한민국의 '5대 킬러 콘텐츠'로 육성해야 합니다."(민주당 전병헌 의원)


정부의 잇따른 게임산업 규제를 둘러싼 논란은 게임 업계는 물론 정치권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게임 과몰입을 사회문제로 바라보는 정부와 게임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업계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게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소모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게임 정책이다. 앞서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셧다운제를 내놨고 문화체육관광부는 부모가 특정시간에 한해 자녀의 게임 접속을 제한하는 게임시간선택제를 도입했다. 하나의 제도를 놓고 두 개의 부처가 따로 관리하는 희한한 모양새가 연출된 것이다.

여기에 최근 국회에 발의된 이른바 '게임중독법'이 통과되면 보건복지부가 주무부처가 가 되고 새로 신설되는 국가중독관리위원회는 국무총리실 산하로 운영된다. 문화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아예 게임산업 육성을 전담하고 있어 상급기관인 문화부와 정반대의 정책을 펼치는 모순에 빠졌다. 이대로 게임산업 규제가 본격화되면 부처 이기주의에 휘둘리는 '누더기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관석 민주당 의원은 "지난 1997년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는 '청소년보호법'을 개정해 전방위적인 규제에 나섰다"며 "당시 폭력적인 만화를 규제해 학교폭력을 근절시키겠다고 했지만 결국 만화산업은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학교폭력은 여전히 남았다"고 말했다.


게임 중독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는지에 대한 논란도 풀어야 할 과제다. 게임이 일정 수준의 과몰입 문제를 수반한다는 데에는 게임 업계도 동의한다. 하지만 정부는 게임, 술, 도박, 마약 등 이른바 4대악에 중독된 환자가 330만명이라는 수치만 내세우고 있을 뿐 게임 중독에 관한 연구는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해외에서도 그동안 게임 과몰입과 폭력성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루어졌지만 이들의 상관 관계를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정부는 게임이 필연적으로 중독을 일으킨다고 주장하지만 중독의 근원이 인터넷인지 게임인지 모호하다"며 "법안 자체의 논리적인 허점이 많고 다른 사회적 요인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 규제에 앞서 공청회 등을 통해 충분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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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게임산업 규제를 둘러싼 논란은 뜨겁다. 하지만 게임사업 자체를 규제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중국은 지난 2007년 우리나라의 셧다운제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가 실효성 논란이 일자 폐지한 데 이어 작년부터는 전방위적인 게임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청소년 총기사고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미국에서도 게임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직접적인 게임산업 규제보다는 사회적인 교육과 캠페인이 우선한다.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게임이 과도한 자극과 보상을 제공해 중독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도박, 마약, 술과 동일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게임산업 자체를 규제하는 것보다 중독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해악에 따른 폐단을 최소화하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임산업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는 데는 게임 업계의 책임도 적지 않다. 그동안 국내 게임업체들은 매출 신장과 가입자 확보에 치중하느라 게임 과몰입 예방활동을 비롯한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역할에 소홀했다. 매년 30%를 넘나드는 영업이익률을 거두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정작 사회공헌활동 비중은 매출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8년 건전한 게임문화 조성과 청소년 게임 과몰입 방지를 위해 게임문화재단까지 설립했지만 최근 국정감사에서 전체 기금 107억원 중 21억원만 청소년상담치료센터에 쓰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차세대 콘텐츠 분야의 대표주자인 게임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정부와 업계가 심도 높은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게임산업 자체의 역사가 15년에 불과하고 한국이 온라인 게임의 종주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하기도 어렵다. 게임산업이 창조경제의 선봉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산업적 측면과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다. 오인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헬싱키무역관은 "모바일 게임 강국으로 부상한 핀란드는 게임산업 전반에 걸쳐 기업, 연구기관, 교육당국 간의 역할 분담과 의사소통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며 "게임의 역기능에 집중하면 단지 규제의 대상이 될 뿐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송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게임산업도 넓은 의미에서 소프트웨어의 한 분야인 만큼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국가가 주도하는 국립소프트웨어연구소 등을 조기에 설립해 지금이라도 다방면에 걸친 연구와 체계적인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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