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지척의 거리에 명산을 품고 있는 전세계에서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도시다. 북한산과 관악산ㆍ아차산ㆍ덕양산의 이른바 외사산(外四山)은 서울을 병풍처럼 감싸안고 있다. 그 중심에 600년 고도를 상징하는 경복궁이 자리잡고 있다.
일제 침탈기를 거치면서 지난 1926년 경복궁은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국적 없는 건물들로 인해 손상돼 침몰하는 왕권의 몰락을 보여주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80년대 이후 경복궁은 고종 당시 중건된 모습을 기준으로 기본 궁제로 복원을 시작, 90년대에는 강녕전과 교태전에 이어 동궁이 복원됐다.
12ㆍ12 군사쿠데타의 역사를 담고 있는 30경비단도 떠났고 96년에는 왕궁의 기개를 짓누르던 조선총독부 건물까지 철거됐다. 경복궁은 홍례문 외곽에 대한 복원에 이어 현재는 고종이 기거하던 건천궁 복원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한일 양국이 독도를 놓고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외교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일제에 의해 망가졌던 경복궁의 옛 모습을 찾아가는 작업은 의미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경복궁 복원사업이 예서 그칠 수는 없다. 경복궁은 국내에 유일한 궁궐(宮闕)이다. 궁궐은 궁의 입구에 망을 볼 수 있는 망루를 갖고 있는 경우를 지칭한다. 경복궁이 궁궐이었다는 징표는 한국일보사 건물 앞에 섬처럼 외떨어진 ‘동십자각’이 유일하다.
고종 2년인 1865년 경복궁 중건시 지금은 사라진 서십자각과 함께 만들어진 동십자각은 경복궁의 위엄을 더한 의미 있는 건축물이다. 하지만 일제는 1926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서십자각을 철거하고 궁궐의 규모를 축소하면서 동십자각을 도시 속의 섬으로 만들어버렸다. 초병이 오르내렸을 서쪽의 계단은 사라졌다.
서십자각의 복원과 동십자각이 원형을 찾는 작업은 그래서 광화문이 옛 자리로 되돌아가 콘크리트의 허물을 벗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경복궁이 원형을 찾아가도록 로드맵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경복궁이 원형을 찾는 작업은 말만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이를 위해 도로망을 재정비해야 하는 등 각종 불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 있는 각종 궁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경복궁의 복원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와 민족적인 자긍심을 생각한다면 작은 희생은 감수해야 마땅하다. 원형을 되찾을 경복궁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가슴이 설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