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6월 3일] 피해자와 피의자

최근 스페인의 스티마소프트웨어라는 업체가 삼성SD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SDS가 구매한 쉬프트정보통신의 ‘가우스’가 자사의 소프트웨어 ‘티차트’를 무단으로 도용한 제품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스티마소프트웨어는 이미 ‘가우스’를 만든 쉬프트정보통신에 승소한 적이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를 도용한 업체에 그치지 않고 제품을 구매한 기업에까지 책임을 묻고 있어 이번 사건이 어디까지 번질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가 된 ‘가우스’는 지식경제부 산하기관인 정보통신기술협회(TTA)로부터 GS(Good Software) 인증을 받은 제품이었다. 정부는 GS 인증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기업에 대해 공공 분야 사업 입찰 때 가점을 주며 구매를 권장해왔다. 하지만 TTA는 제품의 저작권 침해 여부는 검증하지 않았다. 삼성SDS 측은 “정부가 구매를 권장한 소프트웨어를 사서 썼는데 불법 복제물을 거래했다는 혐의를 받아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경찰은 지난 5월29일 삼성SDS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번 사건의 ‘법적’ 피의자는 삼성SDS다. 그러나 진짜 피의자는 저작권 침해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불법 복제물 사용을 권장한 정부라 할 수 있다. 결국은 정부의 허술한 저작권 보호로 저작권자뿐만 아니라 선의의 사용자(삼성SDS)까지 피해를 당한 것이다. 또 해외 업체가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싼 대가도 덤으로 치르게 됐다. 이에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4월26일 ‘세계 지적재산권의 날’ 기념행사를 여의도공원에서 열었다. 이날 주요 행사 중에는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의 복원판이 상영된 뒤 태권V의 불꽃 레이저 빔으로 불법 복제품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격파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을 알리고 불법 복제품 사용을 근절하자는 의미였다. 한쪽에서는 저작권 보호를 역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지불식간에 저작권 침해를 조장하는 정부가 정보기술(IT)산업을 소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할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더불어 실용주의 정부가 주창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어떤 것인지도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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