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ㆍ난ㆍ국ㆍ죽 사군자는 모양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지닌 덕성이 깊고 쓰임새도 폭 넓다. 일년 사철을 따라 각기 피어나서 아름다운 모습과 향으로 감동을 주거니와 꽃이거나 열매거나 잎이거나 뿌리거나 순을 내어 사람이 먹으면 약이 되기도 하니 가히 군자의 표본으로 손색이 없다.
가을의 꽃 국화는 민간에서도 식용으로 널리 쓰이거니와 한방에서는 구하기 쉽고 쓰임새 많은 약재로 친근히 사용된다. 해마다 되풀이해 살아나는 국화의 생명력은 그 옆에서는 다른 꽃이 자라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강인하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 꽃은 그대로 따서 화전을 부치기도 하고, 말려두었다가 차로 끓여 마시면 머리의 열을 내리고 숙취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봄의 연한 잎은 나물로 먹기에 좋고, 꽃과 몸통을 이용하여 국화주를 담그면 겨우내 건강 약술로 마시기 좋다. 옛 사람들은 겨울에 뿌리를 캐어 삶아먹기도 하고 잎에서 짜낸 즙을 벌레 쏘인 데 바르거나 종기의 통증을 멎게 하는 진통제로도 사용했다.
동의보감이 본초강목을 인용하여 소개한 것을 보면 국화밭에서 나오는 샘물만 마셔도 좋다. 이를 국화수라고 하는데 ‘사지가 마비되는 증상과 어지럼증을 치료하는 데 쓴다’고 했
다. 옛 촉나라 어느 마을에서는 국화 군락지에서 흐르는 물을 그 향기와 함께 마시고 사는 주민들이 200~300살까지 살았다고 전한다.
뜰 안에서 피는 국화도 좋지만 야생에서 자라는 들국화의 경우는 더욱 약재로서 인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구절초다. 키가 작고 꽃도 작아 흔히 잡초처럼 여겨지는 구절초는 소국(小菊)이라고도 불린다. 여인들이 몸이 냉하여 생기는 질병을 다스린다. 혈액순환과 부인병, 신경통, 중풍, 원기회복 등에 널리 쓰인다.
본초강목에는 ‘간장을 보호하고 눈을 맑게 하며 머리를 가뿐하게 하고 혈액순환에 효과가 뛰어나다’고 소개되어 있다. 옛 사람들은 구절초 말린 꽃을 국화와 마찬가지로 배게 만드는 데 사용하였는데, 이는 머리를 시원하게 하여 두한족열(頭寒足熱ㆍ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을 돕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충청도 공주에는 구절초로 유명해진 영평사란 작은 절이 있다. 일주문 밖에서부터 절을 둘러싸고 흐드러진 구절초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9월말에 절정을 이룰 터인데, 이맘때면 산사에선 음악회도 열린다. 가을의 선율과 어울린 은은한 국향은 상상만 해도 머리를 개운케 한다.
이은주ㆍ서울 강남구 역삼동 대화당한의원장ㆍ한국밝은성연구소장ㆍwww.daehwad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