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클릭 이 판결] <10> 인터넷실명제 위헌 결정

"공익 내세워 표현의 자유 제한 안돼"

악성댓글·유언비어 부작용 불구 "익명표현 제한 심각한 문제" 판단

공직선거법상으로 효력 유지 '실명제 논란' 당분간 이어질 듯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0년 7월 대심판정에서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의 위헌여부를 가리기에 앞서 공개변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헌법재판소

손모씨 등은 지난 2009년말 언론사 게시판 등에 댓글을 게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터넷 게시판에 본인 확인을 거친 뒤 댓글을 달도록 규정한 '인터넷실명제법'으로 인해 익명으로 글을 작성할 수 없었다.

이에 손씨 등은 인터넷 게시판을 운영하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게시판 이용자가 본인임을 확인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2010년 1월 헌법소원을 냈다.


인터넷 언론사인 '인터넷 미디어오늘'도 방송통신위원회가 본인확인조치의무 대상자로 공시하자 같은 해 4월 헌법소원을 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이래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인터넷상에서의 언어폭력과 명예훼손, 불법정보의 유통 등 역기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역기능은 익명성에 의한 이용자의 책임의식 결여가 중요한 원인으로 파악됐다. 때문에 2005년께 인터넷에서 개인의 신상정보 공개와 언어폭력 등에 따른 피해들이 잇달아 발생하자 본인확인제의 도입이 논의됐고 결국 2007년 1월 정보통신망법이 개정되면서 본인확인제가 도입됐다.

법 개정 이후 본인확인제는 더욱 강화됐다.

본인확인제를 처음 도입할 당시에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중 하루 평균 이용자 수 30만명 이상의 포털서비스 제공자와 하루 평균 이용자 수 20만명 이상의 인터넷언론서비스 제공자가 본인확인조치의무 대상자였다. 그러나 2009년 1월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제30조 제1항의 개정으로 대상자는 서비스 유형에 관계없이 하루 평균 이용자 수 10만명 이상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가 본인확인제의 적용대상으로 공시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웹사이트 수는 2007년 35개, 2008년 37개에서 2009년 153개, 2010년 167개, 2011년 146개로 크게 늘었다.

도입 이전부터 사이버폭력이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전면적인 인터넷 실명제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과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했지만 사이버폭력을 막아야 한다는 필요성에 힘이 실리면서 법이 개정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법 개정 3년 만에 제기된 인터넷실명제법에 대한 헌법소원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수 있는 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법조계 안팎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헌재는 재판관 전원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평의를 여러 차례 연 뒤 "인터넷실명제가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8월 하루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명 이상인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인적사항을 등록한 뒤에야 댓글 또는 게시글을 남길 수 있도록 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44조 1항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관련기사



본인확인제에 대한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은 인정되지만 실명제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제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본인확인제 자체는 게시판 이용자가 허위 글을 작성할 경우 신원 확인을 통해 형사처벌 또는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해 표현 내용에 신중을 기하고 불법정보 등의 게시를 자제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정당한 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적합한 수단임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의 제한을 정당화할 만큼 공익 효과가 명백하다고 보진 않았다.

헌재는 "인터넷은 전 세계를 망라하는 거대한 컴퓨터 통신망의 집합체로서 개방성을 주요한 특징"이라며 "외국의 보편적 규제와 동떨어진 우리 법상의 규제는 손쉽게 회피될 수 있고 우리 법상의 규제가 의도하는 공익의 달성은 단지 허울 좋은 명분에 그치게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본인확인제 이후에 명예훼손, 모욕, 비방의 정보의 게시가 표현의 자유의 사전 제한을 정당화할 정도로 의미 있게 감소했다는 증거도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본인확인제로 익명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표현의 자유는 국가와 사회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이라며 "특히 익명이나 가명으로 이뤄지는 표현은 외부의 명시적·묵시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전파해 국가권력이나 사회의 다수의견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터넷 공간에서 이뤄지는 익명표현은 인터넷이 가지는 정보전달의 신속성과 상호성과 결합해 현실 공간에서의 경제력이나 권력에 의한 위계구조를 극복해 계층·지위·나이·성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다양한 계층의 국민 의사를 평등하게 반영해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되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결정은 추상적으로 기재돼 있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익명표현이 설사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헌법적 가치에 비춰 강하게 보호해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구체화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 결정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본인확인제라는 보호막 없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사회로 나아가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헌재가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인터넷 본인확인제에 대해서는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공직선거법상 인터넷실명제는 효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인터넷실명제 논란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직선거법은 '인터넷 언론사는 선거운동기간 인터넷홈페이지의 게시판·대화방 등에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의 문자·음성·화상 또는 동영상 등의 정보를 게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에는 실명인증방법으로 실명을 확인받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