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스홉킨스 대학의 켄트 칼더(57) 국제관계학 교수는 “북핵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며 “북한이 벼랑 끝 외교전술을 접고 대화의 장으로 나온 것은 국제사회가 더 이상 북한 정권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칼더 교수는 또 동북아 협력관계에 대해 “교과서 왜곡문제와 영토분쟁을 둘러싸고 일본과 한국ㆍ중국간 정치갈등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제협력 관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아시아 인물이 선출될 것이며 한국에 유능한 적임자가 상당수 있다”고 말하고,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서는 “일본은 자격요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지적했다. 존스홉킨스 대학 로움 빌딩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칼더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한 핵 문제가 최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분위기입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ㆍ중국ㆍ일본 등 6자 회담 참가국들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공동보조를 취한 것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강하게 북한을 옥죈 것이 벼랑 끝 외교전술을 펼치고 있는 북한의 정책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볼 수 있죠.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관계에서 미국과 일본의 최우선 외교정책은 한반도 비핵화이며 어떠한 정치적인 이슈보다 중요합니다. 일본은 북한 핵과 함께 사정권에 있는 북한 미사일을 견제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공동보조가 필수적이죠.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강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6자 회담 재개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중국도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죠. 자칫 잘못하다가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거나 북한 난민이 대거 중국으로 유입될 경우 정치ㆍ경제적인 혼란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 6자 회담 참가국들의 이해와 노림수는 각각 다르지만 북한 핵 문제 해결이라는 궁극적인 목적과 지향점은 같다고 봐야 합니다. 최근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환경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죠. -향후 북한 정권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태도는 어떻게 바뀔 것으로 전망합니까. ▦6자 회담에서 파열음이 나고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미국은 북한 핵 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중국이 이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실효성에는 의문이 가지만 미국은 북한 문제를 국제사회로 넘길 가능성이 있는 거죠. 북한이 최근 남북 고위회담을 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자 회담 참가 가능성을 내비친 것도 지연전술 외교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대신 북한은 정권보장을 줄기차게 미국에 요청할 겁니다. 만약 북한이 6자 회담을 국제사회의 악화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이라면 지난 7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 때처럼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해상봉쇄 조치도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북한의 의중에 대해 의심이 갑니다. -화제를 일본으로 돌려볼까요. 국수주의 색채를 짙게 풍기며 한국ㆍ중국 등과 정치갈등을 낳고 있습니다만. ▦일본은 국가위기 상황에서는 보수주의로 회귀하며 절묘한 정책을 구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진주만 공격이나 70년대 오일쇼크나 모두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해 위기를 돌파하는 노련함을 보였죠. 최근 일본이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영토분쟁 등을 놓고 한국ㆍ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것도 결국 경제적으로나 국제정치면에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수주의에 의지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치의 우경화가 보수주의 형태로 다시 태어나는 거죠. -그럼 한국과 일본의 정치ㆍ경제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한국은 일본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양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정치권이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보수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시민사회는 냉정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대회 때 일본 요코하마에서 경기를 보았는데 일본이 경기에 진 뒤 이후 일본 국민들은 한국을 응원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놀랐습니다. 최근에는 ‘욘사마’ 붐을 비롯해 문화교류가 확대되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 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 정부는 화해무드를 조성하는 데 노력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죠. 양국 정치권이 노력한다면 경제협력이 정치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일본 시네마현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법령을 제정한 것은 비 이성적인 행동이었으며, 고이즈미 정권은 이를 방관했다기 보다는 정치적인 이해 때문에 이를 제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거죠. 개인적으로 독도의 실질적인 소유주는 한국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의 안보리 진출에 반대하는 국가들은 일본이 역사왜楮?대한 반성도 없이 국제사회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는데. ▦정확한 지적입니다. 일본이 돈을 앞세워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는 데는 한계와 제약이 따릅니다. 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잃어버린 도덕성을 찾는 것이 상임이사국 진출의 전제조건이 돼야 하겠죠. 먼저 고이즈미 총리는 1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중단해야 합니다.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서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죠. 또 전쟁기념관을 세워 과거 침략행위에 대한 깊은 자기반성을 이웃나라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방안으로 일본은 차기 유엔총장에 한국이나 태국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물러나면 다음은 아시아 국가들이 바통을 이어받게 됩니다. 한국도 차기 사무총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은 차기 사무총장 후보자를 내지 않는 대신에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이 자리를 양보하고 일본은 앞에서 언급한 과제들을 실천하면서 상임 이사국 진출을 도모하는 방안이 강구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한국이 차기 유엔사무총장 자리를 겨냥할 경우 개인적으로 유능한 적임자가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한승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대표적인 인물이겠지요. 유엔이라는 국제사회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는 일본과 이웃국가들이 이 같은 현실적인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흥미로운 제안이군요. 화제를 경제로 돌려볼까요. 중국이 슈퍼파워로 등장하면서 미국과의 환율, 무역 갈등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보호무역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닐까요. ▦미국이 중국에 대해 위앤화 평가절상 압박을 강화하고, 섬유수입을 제한하는 등 언뜻 보기에 양국간 통상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보호무역 기조는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한국ㆍ중국ㆍ일본간 경제관계도 대립과 갈등보다는 협력과 유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겁니다. 찰스 슈머 뉴욕주 상원의원을 필두로 해 의회 내에서 중국에 대한 강경한 보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정치권의 목소리는 현실 경제에서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죠. 부시 행정부가 의회의 강경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나 구두선에서 위앤화 평가절상 압력을 넣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죠. 현실 경제논리를 감안하면 보호무역 정책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겁니다. 세계 최대의 유통회사인 월마트는 한 해에만 180억달러의 제품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고, 보잉은 비행기 부품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제조하거나 중국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도 마찬가지죠. 그만큼 국가간 경제협력은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겁니다.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보호무역 기조를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자국 이익을 위한 보호정책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데요. ▦물론입니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죠. 현재로서는 경상적자와 달러가치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있다고 부시 행정부는 판단하고 있지만 앞으로 쌍둥이적자가 더욱 늘어나거나 달러약세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경우에는 보호무역 공세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3~5년 후에도 무역적자와 달러약세가 나타날 때에는 섬유 등 일부 품목이 아니라 거시경제 전반에 걸쳐 통상압박을 높이고 불균형을 시정할 것을 요구할 겁니다. -중국이 미국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습니다. 미국이 과잉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중국은 IBM의 레노보를 인수한 데 이어 미국 석유회사인 유노칼 인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위앤화 평가절상에 따라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속도를 낼 겁니다. 미 의회와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안보와 에너지에 관련되는 기업을 중국에 팔아서는 안되며 이를 법률로 규제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는데 지지를 얻기는 힘듭니다. 국제 경제의 개방화를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죠. 앞으로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제조공장에 눈독을 들이기 보다는 중국 경제가 현실적으로 필요로 하는 에너지와 원자재 기업 인수에 적극 나설 겁니다. 다만 중국도 반대급부로 금융시장 시스템을 정비하고 개방을 서둘러야 합니다. 중국은 국제 경제의 틀 속에서 일방적인 이익을 얻기 보다는 농산물과 함께 은행ㆍ보험ㆍ증권 등 금융시장도 개방해야 한다고 봅니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미국의 압력도 더욱 거세질 겁니다. 칼더 교수는 한국등 동아시아 정치·역사 권위자 국제 정치ㆍ경제 전문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한국ㆍ중국ㆍ일본 등 동아시아 정치와 역사분야 권위자로 통한다. 러시아ㆍ중국ㆍ라틴아메리카ㆍ중동 등 세계 126개국에서 강의와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학술연구를 하면서 얻은 현실 정치ㆍ경제 경험을 정교한 이론으로 완성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97년에는 저서 '태평양 방위(Pacific Defense)'가 동아시아 사회과학 저서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책으로 꼽혀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마이니치 아시아태평양 그랑프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칼더 교수의 또 다른 저서로는 ▦위기와 보상(88년) ▦동아시아 가장자리(88년) ▦전략적 자본주의(93년) ▦관리되지 않는 자본(97년) 등이 있다. 그는 외교관계(Foreign Affairs) 등 세계적인 잡지에 북한 핵문제를 비롯해 다국적기업, 동아시아 에너지 전쟁, 지역주의와 경제통합 등 폭넓은 주제로 기고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어와 독일어,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며 일본인 아내와 워싱턴에 살고 있다. ◇약력 ▦48년 유타 출생 ▦70년 유타대 정치과학과 졸업 ▦72년 하버드대 정치학 석사 ▦79년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97~2001년 주일대사 특별고문관(국무부) ▦89~2003년 프린스턴대 국제관계학 교수 ▦2003년~현재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학(동아시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