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 태아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 시술 의사의 생명을 빼앗은 전직 목사가 3일 미국에서 사형이 집행되면서 미국 사회는 다시금 낙태 및 사형제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에 휩싸였다.
미 플로리다주는 1994년7월 펜사콜라시의 한 산부인과 병원 앞에서 의사 존 브리튼(69)과 그의 운전사 겸 경호원 제임스 배렛(74)을 총으로 쏴 죽인 전 장로교 목사 폴 힐(49)의 사형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낙태 및 사형 반대론자들의 거센 감형 요청과 주 검찰총장 등에 대한 과격주의자들의 협박편지에도 이날 공권력의 집행을 미룰 수 없다면서 독극물 주입을 통한 사형집행을 지시했다.
이 사건은 폴 힐이 확고부동한 신념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과정에서 변호사조차 고용하지 않은 채 자신의 행위를 `신앙에 따른 결단` 으로 정당화해 미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폴 힐은 사형집행 전인 2일 기자회견에서 순교자로 자처하면서 “나는 천국에 가서 큰 보상을 받을 것”이라며 “나와 같은 신념을 가진 이들이 나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폴 힐을 순교자로 규정하는 과격 운동가들은 플로리다주 일원의 산부인과 병원에 협박 편지를 보내 테러를 경고했고, 이에 따라 주 경찰은 비상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위협을 느낀 산부인과 의사들은 병원 경비 강화에 나서는 것은 물론 개인 경호원까지 채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형 집행으로 1990년 이후 가속화한 폭력적인 반 낙태 운동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고 있다.
1993년 플로리다 주에서는 산부인과 의사를 쏴 죽인 반 낙태주의자 마이클 그리핀이 종신형을 받았고, 1998년에는 제임스 코프가 산부인과 의사를 살해하는 등 최근 낙태 시술 전문의와 병원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반 낙태 운동의 주류는 이러한 폭력화에 반대하고 있다.
목사 재직시 폭력적인 낙태반대운동을 선동해 목사직에서 쫓겨났던 폴 힐은 `도나휴`등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낙태 반대운동을 펼쳤고, 사건 당시 의사와 경호원의 몸과 머리에 여러 발의 총알을 퍼부었다. 의사들은 그가 과대망상 환자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