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경험한 베이비부머가 '주력 부대'인 50대 인구가 최근 10년간 크게 늘어났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만 해도 6%에 불과했지만 2010년 기준으로 655만명으로 13.7% 수준까지 급상승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50대에 진입하면서 50대의 경제활동 참가율도 지난해 73.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50대 주식투자인구는 2004년 76만7,000명에서 2011년 126만3,000명으로 64.7%나 증가했으며 50대 자영업자 수(지난해 8월 기준)도 175만6,000여명으로 2009년 159만5,000여명에서 크게 늘었다. 이처럼 50대 베이비붐 세대는 특유의 경륜과 기술을 바탕으로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50대가 처한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상당수는 은퇴 후 비정규직에 머무는 등 경제ㆍ사회적으로 불안정하지만 부모 봉양과 자녀 부양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대다. 이런 가운데 최근 50대의 고달픈 현실에 주목한 책들이 당사자인 50대는 물론 다른 세대에까지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아울러 현실의 벽 앞에서 주저앉기보다 이전 세대와 차별화된 적극성을 보이며 공연이나 영화 등 다양한 문화활동에 나서는 '액티브 시니어'도 늘고 있는 추세다.
◇50대, 아프니까 중년이다(?)=최근 문화계에서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는 50대 베이비붐세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달 출간된 송호근(57) 서울대 교수의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이와우)'에 대한 50대 장년층의 폭발적인 반응이다. 베이비붐 세대 당사자이기도 한 송 교수는 책에서 "현대가 시작되는 초입인 1970년대 신문명의 담지자가 되었고, 이후 1980년대 운동권 세대, 1990년대 탐닉 세대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며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처럼 베이비부머 세대는 근대가 끝나는 절벽에서 현대로 나아갈 수 있는 교량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우재오 이와우 대표는 "책이 출간되자마자 사흘 동안 초판 3,000부가 완판됐고 지금까지 2만부 이상 팔렸다"며 "당사자인 50대와 40대 말 연령층에서 70% 이상 구매했고 아버지에게 선물 하거나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 20~30대 독자층도 꽤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출판계에서는 50대를 키워드로 내세운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민음사가 최근 펴낸 산문집 '오십의 발견'은 발간 2주 만에 2쇄를 찍었으며 윤재근 교수는 '인생 오십 남달리 살피고 사랑하라'를, 박상태 교수는 '나이로 스스로를 가두지 마라'를, 소설가 박범신은 '소금'을 잇따라 펴냈다. 예스24에 따르면 50대의 구매율은 지난해 1ㆍ4분기 5.5%에서 올해 6.2%로 늘었고 전자책 시장에서도 같은 기간 5.3%에서 7.5%로 증가했다.
◇문화 시장, 50대 고객을 잡아라=출판뿐만 아니라 영화ㆍ공연 등 문화 시장 전반에서 시니어 바람이 거세다. 멀티플렉스 CGV에 따르면 45세 이상 시니어 관객 비중은 2011년 14.8%에서 2012년 17%로 2.2%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다양성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CGV 무비꼴라쥬에서는 40~59세 여성 비율이 2006년 9.05%에서 지난해 17.37%까지 늘었다. 메가박스의 경우도 지난해 1ㆍ4분기 50대 이상 고객이 6%에 불과했지만 올해 1ㆍ4분기에는 8% 수준으로 2%포인트나 늘었다. 홀로 극장을 방문하는 중년 남성도 크게 늘고 있는데 올 1ㆍ4분기 메가박스를 이용한 1인 관객 가운데 40대 이상 남성의 비중은 1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선미 메가박스 동대문점 매니저는 "유동인구가 많은 지리적 특성상 평일 낮 시간대에도 중장년층 남성의 방문이 많은데 퇴근 후 홀로 영화관을 찾는 넥타이족 남성이나 새벽 4~5시에 상영되는 영화를 관람하는 남성들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20~30대 젊은 층이 주류인 공연 시장에서도 액티브 시니어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인터파크INT의 집계 자료에 따르면 2010년 3%에 불과했던 50대 이상의 비중이 지난해 4%로 늘었다. 뮤지컬(2%→3.4%), 연극(2%→3.2%), 클래식(6%→8.7%) 등으로 전장르에 걸쳐 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문화에 대한 액티브 시니어의 관심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악기 구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올 1ㆍ4분기 옥션에서 악기를 구매한 50대 이상 고객은 전체 고객 가운데 16%를 차지했는데 이는 10%의 비중을 보인 20대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문화의 주체로 거듭나다=액티브 시니어는 단순히 영화와 공연을 즐기고 소비하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문화 생산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이른바 '참여형 액티브 시니어'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olleh(올레) 국제스마트폰영화제'에는 해마다 50대 이상 관객 참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17일부터 나흘간 펼쳐진 '제3회 olleh(올레) 국제스마트폰영화제'에는 50대 이상 출품자가 지난해보다 0.2%포인트 상승한 0.4%를 기록했다. 디지털 기기를 통한 소통과 문화 창조에 대한 시니어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이폰으로 9분27초짜리 단편 영화 '잡채'를 만들어 출품하는 김유자(57)씨는 "나이가 많든 적든 스마트폰은 이제 일상의 물건이 됐는데 이것을 가지고 또 다른 세대와 소통하는 즐거움이 좋다"며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영화를 찍는 일련의 일들이 남은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 내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과도 같다"고 말했다. 공연계에서도 액티브 시니어의 참여는 목격된다. 서울시오페라단에서 공개 오디션을 통해 모집하는 시민합창단에 50대 이상 시니어들이 대거 참여한 것. 25~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 '아이다'에 참가하는 시민합창단 45명 가운데 10명이 50세를 넘은 시니어 그룹이다.
청춘을 바쳤지만 인생의 짐은 아직 남아 있고 노후를 근심해야 하는 50대 베이비붐 세대. 우울한 자화상에 갇혀 웅크리고 있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사회와 소통하려는 액티브 시니어의 모습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중년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