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박용성 대한체육회장(두산중공업 회장)

"평창올림픽, 선진 문화의식등국격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오륜기' 의미 내세워 IOC위원들 설득
1년반 동안 지구 13바퀴 도는 강행군
李대통령·이건희 회장 등 '일등공신'
환상적 프레젠테이션으로 승리 쐐기 동계종목별 전문 운영 요원 양성 시급
스폰서 적극 참여 등 기업들 도움 필요
강원지역 특구지정·군인공제회 투자땐
수익창출 등 재정문제도 어려움 없을것
"평창동계올림픽은 대한민국이 경제뿐 아니라 체육과 문화, 국민의식도 진정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음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통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국격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박용성(71ㆍ사진) 대한체육회장(두산중공업 회장)은 "그동안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전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지만 아직 일부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문화적 시민의식이 부족하다는 비아냥을 들어왔던 게 사실"이라며 "이제는 우리도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지난 6일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최종 결정되자 박 회장은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다. 세번에 걸친 평창의 동계올림픽 도전을 함께해왔던 그간의 설움이 모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박 회장은 2003년과 2007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자 국제유도연맹 회장 자격으로, 이번에는 대한체육회의 수장으로서 유치전에 나섰다. 지난 1년 반 동안 그가 비행한 거리는 지구 13바퀴에 해당하는 51만375㎞. 최근 서울 방이동 올림픽회관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는 당시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인터뷰 내내 웃음꽃이 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최전선에서 뛴 박 회장을 만나 평창의 성공 스토리와 함께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에 대해 들어봤다. 박 회장은 소감을 묻자 자신의 공을 다른 이들에게 먼저 돌렸다. 그는 "이번 올림픽 유치의 일등 공신을 꼽자면 단연 이명박 대통령"이라며 "88 서울올림픽 유치 당시에도 대통령이 직접 나선 적이 없었지만 이 대통령은 최종 개최지가 결정되는 남아공 더반에서 무려 닷새나 머물며 IOC 위원들을 직접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IOC 위원 자격으로 전세계를 동분서주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공로도 빼놓지 않았다. 박 회장은 "올림픽유치위원들 사이에서 만약 이 회장이 과거에도 이번처럼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벌써 유치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농담이 나돌 만큼 정말 열심히 뛰셨다"며 "원래 이 회장이 친하지 않은 사람의 집에 가서 밥 먹는 것을 즐기지 않는 성격인데 몸이 불편한데도 올림픽 유치를 위해 직접 IOC 위원들의 집까지 찾아다니며 함께 식사했을 정도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치켜세웠다.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박 회장은 "유치위원회에서 요구하는 거의 모든 사항을 정부가 다 해결해줬기 때문에 유치에 실패할 경우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도 많이 됐다"며 "유치위 직원들에게 '혹시라도 이번에 실패한다면 돌아오는 비행기 화물칸에 나를 싣고 올 각오를 하고 뛰라'고 당부하며 전의를 다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가 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똑바로 우리의 갈 길만을 갔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0월 멕시코 아카풀코에서 올림픽 유치도시를 소개하는 첫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만 해도 세계 언론은 우리를 2등으로 평가했다. 특히 당시 외신들은 평창을 '리조트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아무 것도 볼 게 없는 산골마을'이라고 혹평했다. 반면 경쟁도시인 독일 뮌헨의 경우 130만명이 넘는 인구에다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등 볼거리가 풍부한 관광명소라는 점을 내세웠다. 그러나 박 회장은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1등보다는 2등으로 출발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만약 처음부터 우리가 1등으로 평가받았다면 다른 경쟁국들의 견제가 더욱 심했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자만에 빠졌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쫓아가는 입장이다 보니 계속 공격적으로 나섰고 독일은 방어로 일관하는 수세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점차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독일은 '동계스포츠의 뿌리로 돌아가자'라는 유치 슬로건을 앞세워 유럽 IOC 위원들을 공략했지만 결국 최종 득표수 63(평창)대25(뮌헨)라는 참담한 결과를 맛봤다. 반면 평창은 '새로운 지평을 열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IOC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까지 총 21회에 걸쳐 동계올림픽이 열렸지만 사실상 북미와 유럽이 모든 개최지를 거의 독식해왔다. 박 회장은 이 같은 모순을 지적하며 표밭갈이에 나섰다. 박 회장은 IOC 위원들을 만날 때마다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기는 다섯 대륙을 뜻하는 5개의 원으로 이뤄져 있는데 동계올림픽은 북미와 유럽이 독차지해왔으니 2개의 원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IOC 위원들을 설득했다고 전했다 개최지를 최종 발표하는 날 경쟁도시들을 압도한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은 우리의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박 회장은 "본래 프레젠테이션은 잘해야 본전이지만 한국이 이러한 정설을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물론 오래전부터 유치 준비도 잘해왔지만 환상적인 프레젠테이션 덕분에 추가로 3~4표는 더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평창의 승리는 국내는 물론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는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게 박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우선 대회 운영능력부터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 회장은 "우리는 국제적인 대규모 동계스포츠대회를 진행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선수 육성 못지않게 종목별로 유능한 경기 운영요원을 양성해야 한다"며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까지 앞으로 7년간 대회 운영요원을 엄선해 철저한 트레이닝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내 기업들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많은 기여를 했듯이 성공적인 대회 운영을 위해서도 기업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는 88 서울올림픽 때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더 커지고 국제화됐지만 국내 기업 가운데 올림픽 공식 스폰서는 삼성전자가 유일하다"며 전자 외에 다른 업종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참여가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평창동계올림픽의 공식 차량이 독일 자동차로 선정돼 강원도를 돌아다닌다면 우리 국민정서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며 "우리 기업들도 올림픽을 통해 제품을 알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만큼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원도의 재정 문제가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평창 등 강원 지역이 올림픽특구로 지정되면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본다"며 "특히 군인공제회가 투자 파이낸스 약속을 한데다 운영본부와 선수촌 용도로 지어지는 콘도와 아파트는 대회가 끝나면 분양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대회 조직위원장과 조직위 구성에 대한 질문에는 결국 정부와 협의해 최종 결정될 사항이지만 아무래도 유치위원회 경험이 있는 인력들을 중심으로 조직위원회가 꾸려지는 게 효율성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최근 논란이 됐던 남북한 공동개최에 대해서는 "자크 로게 IOC 위원장도 절대 불가라고 단호히 말했듯 한마디로 '조크' 수준의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끝으로 "우리 국민들은 특유의 신바람정신을 토대로 어떤 고난과 역경도 슬기롭게 이겨내왔다"며 "국민 모두가 평창동계올림픽은 조직위원회의 올림픽도 아니고 강원도만의 올림픽도 아닌 대한민국의 올림픽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사상 최고의 동계올림픽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제2 김연아 육성 등 경기력 향상 총력"
■ 대한체육회 올림픽 성공개최 위한 준비는 지난 6일 평창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최종 확정된 후 가장 바빠진 곳은 대한체육회다. 국내 아마추어 스포츠를 대표하는 단체이자 대한민국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의 역할을 겸임하고 있는 대한체육회는 이제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앞으로 7년간 또 한번의 기적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먼저 대한체육회는 본연의 업무에 맞춰 국내 동계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하고 선수들의 경기력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이 온 국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지금부터 대한체육회가 중심이 돼 차근차근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한체육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손잡고 동계스포츠 육성정책인 '드라이브 더 드림(Drive the Dream)'을 본격적으로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오는 2018년까지 총 5,500억원을 투자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의 효자종목인 빙상은 물론 스키와 스노보드ㆍ스키점프ㆍ봅슬레이 등 모든 종목에서 골고루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목표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향후 7년 뒤 선수로 뛰게 될 현재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주 육성 대상이다. 특히 메달 수가 가장 많지만 정작 올림픽에서는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한 스키의 경우 올가을부터 독일 스키학교로 유망주를 보내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칠 계획이다. 또 여름에는 남반구인 뉴질랜드로 자리를 옮겨 집중적인 교육에 나선다. 이밖에 대한체육회는 '제2의 김연아' 발굴을 목표로 정부와 함께 ▦멀티트레이닝센터 건립을 통한 상시 훈련환경 구축 ▦훈련의 과학화 지원 ▦글로벌 선수 인재 양성을 위한 선진 교육기관 입학 지원 및 해외 지도자 초청 강습 등을 추진한다. 박 회장은 "이번 올림픽 유망주 육성 프로젝트가 미래를 내다보고 추진하고 있는 만큼 당장 2014년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우리 선수단에서 많은 메달이 쏟아져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두산 구조조정 등 변화·도전즐기는 '워크홀릭'
■박회장은 박용성 회장은 현실에 안주하는 게 더 두렵다고 말한다. 그만큼 변화를 즐긴다. 그의 성향은 기업 경영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는 국내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지난 1990년대 중반 과감히 구조조정을 도입해 두산을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그는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강한 신념으로 두산의 모태이던 OB맥주까지 매각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다들 미쳤구나, 두산이 정말 어렵구나"라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박 회장의 도전정신이 오늘의 두산을 만든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로운 변화를 향한 박 회장의 도전은 비단 기업경영에만 머물지 않는다. 두산은 그동안 그룹 내 각 계열사별로 장학ㆍ학술지원사업과 사회봉사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점차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두산의 사회공헌활동에도 색다른 변화가 필요했다. 이에 박 회장이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사회공헌활동 방안을 모색해볼 것을 지시하면서 변화는 시작됐다. 그러던 중 2008년 중앙대가 두산그룹에 재단 참여를 제의해왔다. 박 회장은 오랜 고민 끝에 두산의 중앙대 재단 참여를 결정했다. 그의 부친인 고 박두병 회장이 평소 강조한 '교육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유지를 받들어 중앙대의 국제경쟁력을 높여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해야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박 회장은 올해 만 71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은 사람 못지않은 왕성한 추진력을 자랑한다. 이 같은 열정은 그의 좌우명인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ㆍ사람의 할 일을 다한 뒤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에서 비롯됐다. 그의 사전에는 '대충대충'이라는 말은 없다. 어설프게 일할 것이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1982년 박 회장은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대한유도협회 부회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박 회장은 사실 스포츠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이왕 자리를 맡았으니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은 그는 이후 유도협회 회장과 국제유도연맹 회장 자리까지 꿰차면서 점차 사라지던 유도에 대한 관심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흰색 도복 일색이던 유도계에 처음으로 컬러 유도복을 도입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02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선출됐다. 박 회장은 1993년 '꿈을 가진 자만이 이룰 수 있다'는 책을 펴냈다. 그가 쓴 책 제목처럼 오늘도 박 회장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약력 ▦1940년 서울 ▦1959년 경기고 졸업 ▦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69년 뉴욕대 경영대학원 졸업 ▦1973년 한국투자금융 상무 ▦1984년 동양맥주 대표이사 사장 ▦1986년 대한유도협회 회장 ▦1995년 국제유도연맹 회장 ▦2000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2002~200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2005년 두산그룹 회장 ▦2007년 두산중공업 회장 ▦2008년 중앙대 이사장 ▦2009년 대한체육회 회장 ▦2010년 아시아올림픽위원회(OCA)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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