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벌크선 운송업체인 대한해운은 지난 6월 25만톤급의 중고 VLCC(초대형 유조선) 한 척을 구입했다. 벌크선사인 대한해운이 이례적으로 유조선까지 사들인 것은 이 배를 개조해 벌크선으로 쓰기 위해서다.
중국의 경기 확장 등으로 석탄이나 곡물 등 건화물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선박 공급이 미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해운업계에 때아닌 유조선 ‘튜닝’ 붐이 일고 있다. 현대상선ㆍ대한해운 등에서 발주한 20여척의 유조선이 한창 개조작업을 진행중이거나 대기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덕분에 중국의 수리조선소들은 밀려드는 일감에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국내 대형 조선소들도 유조선 개조역량을 갖추고는 있지만 고가의 선박건조 수주물량을 소화하느라 개조에는 눈을 돌릴 여유가 없어 수리 작업은 대부분 중국측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선사들이 이처럼 유조선을 구입해 벌크선으로 개조하려는 것은 벌크선 시장이 사상 최대 호황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크선 운임지수인 BDI는 지난 10일 1만포인트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17만톤급 벌크선을 하루동안 빌리는데 지급하는 용선료도 올초 8만달러 수준에서 최근 20만달러 안팎까지 껑충 뛰었다.
게다가 중국의 경기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어서 벌크선 시황 호조는 앞으로도 2~3년간은 계속될 전망.
이에 따라 선사들은 지난해와 올초에 걸쳐 벌크선 신규 발주에 대거 나섰지만 선사들이 이들 선박을 인도받을 수 있는 시기는 빨라야 2010년은 돼야 한다. 결국 공기가 짧고 비용도 적게 드는 유조선 개조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벌크선을 신규 발주할 경우 18만톤급은 8,300만달러, 30만톤급은 1억2,000만달러의 가격을 지급해야 한다. 비용도 부담이지만 문제는 지금 발주해도 2~3년 후에야 배를 인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불붙고 있는 황금시장을 놓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반면 유조선을 벌크선으로 개조할 때 드는 비용은 2,000만달러. 유조선 구입가격(척당 4,300만달러)까지 포함해도 6,300만달러면 20만톤 규모의 대형 벌크선 한 척을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수리 기간도 6개월이면 충분해 앞으로 수년 동안 짭짤한 수익을 올리며 운항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쉬운 점은 유조선 개조작업이 대부분 중국 수리조선소에 맡겨 진다는 것.
선주협회의 한 관계자는 “유조선의 개조 수리는 대형 조선소라야 가능한데 국내 업체의 경우 신조 물량으로도 도크가 꽉 차 있어 모든 선사들이 중국 수리조선소에 의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척당 2,000만달러의 수리 비용을 감안하면 4억달러 이상의 시장을 중국측에 뺏기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선 남북 합작조선사업 차원에서 북한에 수리조선소를 건립하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벌크선 호황을 감안하면 선박개조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북한에 수리조선소를 만들어 개조 물량을 맡기는 것이 남북경협 등 여러 측면에서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