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방글라데시·캄보디아·태국·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지며 정정불안이 가속화하고 있다. 부정선거 규탄, 정권퇴진, 근로자 처우개선 등 각국 시위대의 요구는 다르지만 그 바탕에는 서민들의 생활고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환율상승 등으로 이들 국가의 물가가 급등한 반면 실질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아 서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위로 정정이 불안해지면서 외국인 투자가들이 빠져나가 금융시장 혼란까지 야기됨에 따라 '정정불안→경제혼란→생활고 가중→시위'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가장 큰 혼란에 휩싸인 곳은 방글라데시다. 5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정부는 야권의 선거불참 선언에도 총선을 강행했고 이에 야권은 대규모 투표방해 시위를 벌여 최소 16명이 사망하고 투표소 200여곳이 불에 탔다. 이웃나라 캄보디아에서도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최근 근로자 임금인상 및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까지 겹쳐 5일 현재 최소 4명이 사망했다.
캄보디아와 북서쪽 국경을 맞댄 태국에서도 정부가 비리혐의로 해외도피 중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사면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반정부시위가 지난해 11월부터 이어져왔다. 반정부시위를 이끌고 있는 수텝 트악수반 전 부총리는 오는 13일 방콕 일대를 마비시키는 '방콕 셧다운'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시위대는 5일 이를 위한 예행집회를 열었다. 태국 정부가 2월 초 조기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야권은 잉락 친나왓 총리의 즉각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동남아 권역 남쪽에 위치한 말레이시아에서도 기름값 등 생필품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시위대 1만 5,000명이 지난해 말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독립광장을 점거하는 시위를 벌였다.
일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6일 동남아 국가에서 벌어지는 동시다발적 시위의 이유가 부정선거 의혹, 정권에 대한 불만 등 각양각색이지만 기저에는 생활고라는 공통적인 이유가 있다고 분석했다. 방글라데시소비자연합(CAB)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지난해 부동산 임대비용 상승, 식료품·연료·수도·전기 가격 인상 등으로 생활비가 11%나 급증했다. 캄보디아에서도 지난해 10월 현재 물가상승률이 전년 대비 4.18%로 1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근로자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해 서민의 불만이 급등하고 있다. 디플로맷은 "캄보디아 월 최저임금은 80달러로 동남아 최저 수준"이라며 "시위대는 160달러로 올려달라고 요구하지만 정부는 100달러 인상을 주장하며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태국 역시 2012년 2.8% 성장했으나 지난해 1·4분기 -1.6%, 2·4분기 0%, 3·4분기 1.3% 성장하는 등 성장률이 둔화하며 서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에서도 최근 정부가 연료보조금을 삭감하며 지난해 11월 현재 물가상승률이 전년 대비 2.9%로 2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생활고에 불만을 품은 국민들의 시위가 정정불안과 금융시장 혼란으로 이어져 결국 서민들의 삶이 더 팍팍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으로 글로벌 투자가들이 유망한 신흥국 골라내기 작업을 하는 가운데 이 같은 악재가 겹치며 투자금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캄보디아 종합주가지수는 3일 현재 전거래일보다 4.85% 급락했으며 태국 증시 역시 6일 장중 1,205.44를 기록해 약 1년6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말레이시아 증시도 지난해 말부터 4거래일 연속 하락하고 있다. 디플로맷은 "이들 국가의 시위가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 대응능력에 따라 위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