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단독처리냐, 아니면 여야 간 합의에 의한 표결처리냐.
이명박 대통령의 오는 15일 국회방문이 정해짐과 동시에 한미 FTA 비준안의 운명을 가를 여권의 주사위는 사실상 던져졌다.
청와대와 국회는 11일 이 대통령의 15일 국회방문을 확정했다. 이 사이 이 대통령은 13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날 예정이어서 만약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에 대한 모종의 합의안을 가져오고 이를 야당이 수용한다면 한미 FTA 비준안은 여야 표결처리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야당이 ISD 합의안을 거부하거나 이 대통령이 ISD 합의안 도출에 실패할 경우 여당은 단독처리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이 대통령의 국회방문 자체가 단독처리의 명분을 쌓으려는 청와대와 여권의 전략으로 분석된다. 다만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 야권 강경파의 반발과 친박근혜계의 여권 의견 불일치가 한미 FTA 11월 처리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미 FTA 비준안과 관련, 11월 안에 이 대통령의 국회방문 직후 여당의 단독처리를 거쳐 이 대통령이 이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국정쇄신안과 개각 등을 단행하는 4단계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방문이 확정되기까지 여권의 명분축적 노력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국회 본회의(10일)를 하루 앞둔 지난 9일 청와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이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설득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으로 이 대통령의 국회방문을 추진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 대통령은 이 계획에 부정적이었으나 참모진의 설득에 방문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날 청와대는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전화해 11일 오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하고 야당을 설득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의장은 여야 지도부에 의사를 타진한 후 "가능하다"는 답을 보냈다.
하지만 야당이 사전협의 부족 등을 이유로 반발하자 국회방문 일정을 오는 15일로 늦췄다. 이번주 말 하와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나 ISD에 대해 새로운 제안을 받아오면 한미 FTA 처리를 도울 수 있다는 야당 측의 주장도 고려한 선택이었다.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 대통령은 국회를 찾아 직접 설득하기로 한 만큼 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강한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야당이 간곡하게 요청해 그 뜻을 받아들이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국회방문은 2008년 취임식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참석까지 포함해 네 차례 있었지만 이는 모두 공식행사였으며 비공식적인 국회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라는 정책현안 처리를 위해 현직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2004년 1월8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방문이 형식이나 내용에서 이 대통령의 이번 국회방문과 닮은꼴로 꼽힌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대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국회를 찾았다. 국회의장과 당 대표들만 참석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만남에서 노 전 대통령은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협조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119조원 규모의 농업종합대책을 설명하기도 했다. 한·칠레 FTA 비준안은 결국 2004년 2월1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청와대는 이 같은 사례가 이번에도 적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 대통령의 국회방문을 계기로 여권의 비준안 처리동력이 되살아나 이른 시일 내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를 기대하는 것.
하지만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국회방문을 '밀어붙이기용 명분쌓기'라고 경계하고 있어 이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더라도 민주당 지도부가 면담에 참석할지는 미지수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15일 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결정되지 않았다"며 "그때 가서도 상황이 똑같고 새로운 제안 없이 단순히 밀어붙이고 압력을 주기 위해 하는 면담이라면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국회방문 이후에도 여야가 극적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여권이 결국 비준안 강행처리 수순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