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삼성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일대 혁신 바람이 몰아친 분야가 금융계열이다. 주요 금융계열사에서 전통 금융 인맥이 퇴조하고 이른바 삼성전자 등 전자 출신이 금융 최고경영자(CEO)로 진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1953년생이 핵심세력으로 부상하면서 '53년생과 삼성전자 출신'이 삼성 금융 CEO의 새로운 인맥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변화의 이면에는 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금융계열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전략이 담겨 있다. 실제 삼성 내부에서도 금융계열사의 발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금융계열사의 변신을 주도할 핵심축이자 태풍의 눈은 박근희 삼성생명 사장이다. 1953년생으로 삼성전관(현 삼성SDI)에 입사한 그는 옛 그룹 구조조정본부 경영진단팀장과 삼성캐피탈ㆍ삼성카드 사장, 삼성 중국본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삼성 내부에서도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친 경영분석과 관리ㆍ재무 전문가로 손꼽힌다. 다방면에서 그의 능력이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 박 사장이 삼성 금융계열 맏형인 삼성생명의 CEO를 맡으면서 삼성생명은 물론 다른 금융계열사의 변모와 글로벌화를 이끄는 핵심리더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박 사장은 삼성생명의 방향에 대해 "창의적 변화, 혁신으로 국내 1등에서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한다. 올해를 글로벌 도약의 원년으로 삼아 삼성 금융계열의 혁신을 주도하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이자 미션인 것이다. 지대섭 삼성화재 사장도 '53년ㆍ전자 출신'의 CEO 가운데 한 명이다. 1953년생으로 제일모직에 입사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상무ㆍ전무를 역임했다. 지난 2008년 5월 전자에서 화재 CEO로 자리를 옮긴 뒤 지난해 인사에서 유임되면서 삼성화재의 글로벌화라는 임무를 맡게 됐다. 지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올해 런던에 유럽법인을 설립해 동구권 시장을 개척하고 아시아 지역의 사업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재보험사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도 1953년생이다. 삼성생명에 입사한 그는 기획조사팀장ㆍ재무기획팀장 등을 거쳐 2008년부터 증권 CEO로 일하고 있다. 그 역시 삼성전자의 성공 DNA를 증권에 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박 사장 역시 삼성그룹의 제2의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1957년생인 최치훈 삼성카드 사장 역시 전자 출신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삼성으로 옮긴 뒤 삼성전자 디지털프린팅사업부장, 삼성SDI 사장을 거쳤다. 최 사장이 카드로 자리를 이동한 것 역시 금융계열 선진화라는 하는 포석이 깔려 있다. 최 사장은 전자에서 프린터 일류화 사업을 이끌고 삼성SDI 사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소형 2차전지의 글로벌 기반을 닦은 경험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외홍(1952년) 삼성벤처투자 사장도 삼성전자에 입사해 경영지원실 경리팀장ㆍ경영지원총괄 등 삼성전자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사실상 삼성의 주요 금융계열사에서 전자계열이 동시에 전면 부각된 것이다. 과거 삼성 금융계열사 CEO의 경우 비전자계열 출신이 거의 장악했다. 금융계열이나 삼성중공업 등 비전자계열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 주를 이뤘다. 전자계열에서 금융계열 CEO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정기 인사를 통해 삼성 금융계열 CEO들은 세대교체와 더불어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게 됐다. 또 사장단 연령이 한층 젊어졌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삼성 금융계열사는 전자와 1953년생이라는 두 키워드를 가진 리더를 중심으로 올 한 해 글로벌화라는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