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6일 법무 장관에게 지시한 내용은 특검이든 지휘권 발동을 통한 재수사든 BBK 문제에 대해 사실상 원점에서 다시 수사를 시작하라는 것이다. BBK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침묵하던 노 대통령이 선거 막판에 정치적 초강수를 두고 나선 셈이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한나라당과의 뒷거래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BBK 문제에 대해 함구로 일관했다. 판세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굳어져가는 상황에서 수사결과 발표에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검찰의 독립성과 자신의 정치적 중립, 나아가 퇴임 후 정치적 행보 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광운대 발언 동영상이 터진 직후 청와대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극히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던 것도 같은 줄기였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청와대가 섣불리 나섰다가 여론의 역풍만 자초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동영상에 대한 민정 차원의 정밀 조사와 정무 라인의 정치적 판단을 종합한 결과 상황은 급반전됐다. 전해철 민정수석은 이날 오후5시40분 긴급 브리핑을 통해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으나 국민적 의혹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고 이 후보의 육성 동영상은 국민이 품었던 의혹을 더욱 더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을 지휘권 발동 검토를 지시하게 된 배경으로 들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정치권의 특검법 처리를 하루 앞두고 노 대통령이 이를 지시한 배경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특검법이 국회에서 물리적 충돌로 통과되지 못한 후 지휘권 발동을 지시하면 정치적 오해를 가중시킬 수 있다”고 밝힌 대목을 눈여겨볼 수 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국회에서 특검법이 통과되면 특검에 맡기되 안 되면 재수사에 나서도록 ‘정치적 선수’를 친 셈이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무조건 검찰에 맡겨 재수사를 지시할 경우 국민이 검찰을 믿겠느냐”며 “현재로서는 특검이 최선이며 검찰이 이에 앞서 보강수사를 할지 여부는 법무장관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 특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검찰의 재수사 지휘권 발동 검토를 지시하면서 “국회에서 특검법이 논의 중인 상황을 감안해 국민이 신뢰할 가장 실효성 있는 조치를 강구하라”고 말한 점도 같은 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