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러시아ㆍ우크라이나 가스 분쟁에 이어 이란의 핵 개발과 나이지리아의 정정 불안 등으로 국제유가가 조만간 사상 최고가격에 도달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그 결과로 주식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최근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유가인 두바이유가 배럴당 60달러선을 넘보고 있고,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도 최근 4개월 만에 최고가인 배럴당 70달러선에 근접하고 있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유가 상승과 아울러 국가간 에너지 확보 경쟁이 노골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의 석유생산 능력은 한계에 도달해 있어 주요 산유국 중 어느 한곳에서 공급 차질이 생기면 석유위기가 재연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가스를 무기로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에 자원패권주의를 과시했고, 극동 지역에서는 시베리아 송유관 건설을 계기로 한국ㆍ중국ㆍ일본에 대한 에너지자원의 영향력 극대화를 시도하려 하고 있다. 일본은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 시베리아 송유관 노선 등을 둘러싸고 중국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에너지 소비의 블랙홀로 등장한 중국은 최근 나이지리아 유전지분을 매입했고 카자흐스탄 유전 인수전에도 참여하는 등 공격적인 유전 인수를 통해 오는 2010년까지 해외 석유생산 규모를 현재보다 두 배로 확대할 계획임을 밝혔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세계 4위의 원유 수출국인 이란의 우라늄 농축 활동 재개와 관련해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를 경고하면서도 경제 제재시 발생할지 모르는 유가상승 우려 때문에 경제 봉쇄에 대해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원자재 최대 수요국인 중국은 인도와 에너지 확보를 위한 출혈경쟁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으나 인구 대국이자 에너지 소비 대국인 양국간의 총성 없는 에너지 확보 경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국가들은 아프리카나 러시아 등으로부터 공급되는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러시아ㆍ우크라이나 가스 분쟁으로 가스 공급 중단 위기를 경험한 독일과 이탈리아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26년 만에 원자력발전소 신규 건설 재개를 선언했고 중국은 2020년까지 24기 이상의 원전건설 계획을 세워놓고 있으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도 2015년 가동을 목표로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세계 각국의 원전 건설 추진 배경에 대해 원자력에너지가 갖는 친환경성과 경제성의 명분도 강하지만 원자력이 국가 에너지 안보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에너지 전문가들은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경쟁력이 있는 한국표준형원전의 설계와 건설 기술의 수출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에너지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는 국가경쟁력과 생존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태평양전쟁이 에너지 확보 전쟁이고 일본이 에너지 확보에 실패함에 따라 미국에 졌다는 것이 일본의 냉철한 분석이고 이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본이 원자력발전에, 해외 에너지자원 확보 등에 보이는 집착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일례로 자주개발원유 확보률이 일본은 11%, 중국은 18%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3%에 불과하다.
일본은 무려 60기의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했고 사용한 우라늄 연료를 재활용하는 시설도 갖고 있으며 대만에 원자력발전소를 수출까지 하고 있다. 지난해 원유값이 배럴당 20~30달러에서 60~70달러로 요동쳤음에도 우리 경제가 큰 영향을 받지 않은 데는 원자력발전의 효과가 크다.
세계 4위의 원유 수출국인 이란이 원유를 무기화할 경우 중동발 석유위기는 재연될 수밖에 없다. 해외 석유와 가스자원의 개발, 유연탄이나 우라늄자원과 같은 에너지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외교적 노력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