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만큼 행복하게 임기를 마무리하는 정치인이 또 있을까. 룰라 대통령은 이제 임기를 5개월도 남겨두지 않았지만 국민 지지도는 무려 76%에 이른다. 룰라 대통령의 가장 큰 치적은 '경제 발전'이다. 그는 외환위기, 살인적 인플레이션, 방만한 재정운용 등으로 상징되는 '브라질 병(病)'을 치유한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룰라 정부는 외국자본 유치, 천연자원 개발, 사회간접자본(SOC) 구축 등에 박차를 가해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아울러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함으로써 빈부격차를 줄이는 한편 중산층을 크게 늘려 내수 시장을 확대했다. 브라질 경제는 지난 2003년 룰라 대통령 취임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지난해의 경우 마이너스 성장률(-0.2%)을 기록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닌 것으로 평가됐다. 브라질이 요즘 너무 잘 나가서 탈이다. 그리스발(發) 유럽 재정위기로 전세계적으로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지만 브라질은 경기 과열을 우려할 정도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달 25일 "브라질 경제의 당면 과제는 경기과열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전문가들은 올해 브라질의 경제성장률을 7%로 예상하고 있고, 브라질 정부도 최근 성장률 전망치를 5.2%에서 5.5%로 상향 조정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가장 큰 숙제로 삼고 있을 정도다. ◇ 출구전략 여건 무르익어 =브라질 경제는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난 3월 소매판매와 산업생산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15.7%와 19.7% 늘어났다. 올 들어 4월 말까지 창출된 신규 일자리만 96만2,000개에 달해 지난 1992년 이후 최대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4ㆍ4분기 4.3%의 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ㆍ4분기에는 10%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V자형' 경기 회복의 배경으로 ▦ 철광석ㆍ설탕ㆍ커피 등 상품(commodity) 수출의 호조 ▦정부 차원의 신용(credit) 확대 ▦소비진작을 위한 자동차 및 가전제품 판매세 인하 등을 꼽았다. 고도 성장은 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올 4월까지 브라질 물가상승률은 5.26%에 달했다. 이는 중앙은행의 연간 물가 억제 목표치(4.5%)보다 0.7%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은 5.5%로 따라 지난해(4.31%)보다 1%포인트 이상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악몽을 갖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지난 1988년 980%를 시작으로 ▦89년 1,972% ▦90년 1,620%를 거쳐 93년에는 무려 2,477%로 치솟기도 했다. WSJ은 "브라질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은 오랫동안 아킬레스건이었다"며 "이런 혼란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ㆍ아시아 국가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0~2%대의 저금리 기조를 유지한 반면 브라질이 기준금리를 무려 8.75%로 유지했던 것도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서였다. ◇외국자본 유입 우려로 금리 인상 쉽지 않아=브라질도 최근 정부지출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유럽처럼 재정위기에 벗어나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수요 확대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정부가 돈을 덜 쓰는 것"이라며 100억헤알(약 6조7,600억원) 규모의 정부지출을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브라질은 이에 앞서 기준금리 인상도 단행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8개월간 동결한 기준금리(8.75%)를 9.5%로 인상한다고 지난달 28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4.5%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최근 "기준금리는 올해 말 11.75%까지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금리인상 카드는 상당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브라질은 달러 캐리트레이드(저금리 국가에서 돈을 빌려 고금리 국가에 투자하는 것)가 성행하는 대표적인 신흥국가다. 최근에는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달러 강세로 브라질 헤알화도 약세로 돌아섰지만, 브라질 증시와 헤알화 가치가 최근까지 강세를 유지한 것도 물밀듯이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금 때문이었다. 금리가 오르면 이런 단기 자금 유입 규모는 더욱 확대되며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킬 수 있다. 정부가 재정감축 노력을 펼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코노미스트지(紙)는 "정부의 느슨한 재정정책이 중앙은행의 입지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며 "정부가 올 들어 재정감축 계획을 발표했지만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3년부터 2009년까지 브라질 연방정부의 공무원 숫자는 10%가량 늘어났는데 총 급여액은 2배 이상 늘어났다. ◇과감한 재정 감축 필요=전문가들은 룰라 정부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과감한 재정감축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룰라 정부가 정부 주도의 성장을 통해 인기를 지속하는데다 오는 10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룰라 대통령의 후광에 힘입어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딜마 호우세피 전 수석장관은 "사회복지 프로그램과 SOC 사업 투자자금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호우세피 후보는 최근 야당 후보를 앞질러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 그룹은 "브라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룰라 정부와의 연속성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심리"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룰라 정부와의 연속성은 방만한 재정 운용에 따른 물가 불안을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브라질 경제가 과열양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최근의 원자재 가격 하락세는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브라질은 호주 등과 함께 대표적인 '자원 부국'으로 꼽힌다. 철광석은 물론 설탕, 커피, 소고기 등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세계 최대 철광석업체인 발레는 글로벌 철광석 시장에서 35%의 점유율로 호주의 BHP 빌리턴ㆍ리오틴토과 함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철광석 가격은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더블딥(이중침체) 우려 심화 및 중국의 긴축정책 전환 조짐 등의 여파로 최근 톤당 185달러에서 150달러로 19%가량 떨어졌다. 특히 발레 등 글로벌 철광석 업체들이 올 들어 계약방식을 기존 연간단위에서 현물 가격 반영도가 높은 분기단위로 전환한 탓에 가격변동 심화에 따른 손실을 자초한 측면도 크다. 브라질 수출에서 철광석 부문은 10%가량을 차지한다. 따라서 철광석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은 브라질의 수출 둔화로 이어져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국제원유 가격 급락도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2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6월 인도분 가격은 전일 보다 배럴당 1.46달러(2.08%) 하락한 68.75달러를 기록했다. WTI 가격은 이달 들어서만 7%가까이 급락했다. 브라질은 세계 4위의 에너지회사인 국영 페르토브라스와 함께 메이저 석유업체들의 투자를 적극 유치했다. 이에 따라 비(非)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로는 상당량의 원유를 생산한다. 비OPEC 국가들의 원유 생산량은 전세계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브라질은 현재 원유를 수입하고 있지만 적극적인 유전개발을 통해 원유 수출국으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하지만 많은 투자비용이 소요되는 유전개발을 위해서는 확실한 인센티브가 보장되어야 한다. 폴 토세티 PFC에너지 애널리스트는 "멕시코만과 브라질의 심해유전, 캐나다 오일샌드 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어느 수준의 가격대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미국이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고를 계기로 연안시추 중단 등 석유개발 요건을 강화하는 것도 브라질로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브라질 정부가 심혈을 쏟고 있는 대서양 연안 심해유전 개발이 환경오염 등의 이유로 차질을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