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든든한 유동성으로 무장, 해외 금융사 사냥 호시탐탐<br>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 등 90년대이후 내실 다져온 은행들<br>미·유럽發 위기 타격 거의 없어 "글로벌 전략 본격 추진 적기"<br>80년대 해외진출 실패 교훈삼아 "경기 나빠져도 발 빼지 않을것"
| 3대 메가뱅크를 비롯한 일본 금융회사들은 엔화 강세와 막강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화려한 재기를 노리고 있다. 일본 금융 1번지로 꼽히는 도쿄 마루노우치-나카도리 거리. /도쿄=김성수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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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중심부로 고층 빌딩이 즐비한 마루노우치-나카도리 거리. 서울로 치면 주요 금융기관들이 밀집해 있는 을지로1가나 여의도에 해당한다. 거리 곳곳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높은 빌딩들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일본 금융산업의 명암을 보여주는 듯했다.
일본 금융 산업은 지난 1989년 정점에 달했던 거품경제가 1990년대 들어 급속하게 꺼지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불량채권 해결에 전력투구해야만 했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일본의 3대 메가뱅크(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ㆍ미즈호파이낸셜그룹ㆍ미쓰이스미토모파이낸셜그룹)는 바로 이런 과정에서 태어났다. 바로 그들이 지금 든든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서바이벌 게임에 뛰어들 태세를 갖추고 있다..
◇해외 금융기관 인수합병(M&A) 눈독="일본 금융산업은 미국발 금융위기나 유럽발 재정위기에 따른 타격이 거의 없어 현재 포지션이 좋은 상태이므로 글로벌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때라고 봅니다."(리쿠시 가와카미 SBJ은행 고문)
도쿄 현지에서 만난 금융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글로벌 진출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개인예금을 바탕으로 한 든든한 유동성에다 엔고를 활용하면 휘청거리는 유럽 또는 미국의 금융기관을 싼값에 사들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본이 해외 M&A에 눈독을 들이는 배경에는 주요 은행의 수익구조도 작용하고 있다. 히데유키 다카하시 미즈호코퍼레이트은행 상무는 "3대 메가뱅크 수익의 70~80%가량이 국내에 치우치다 보니 은행의 경영전략에 있어 글로벌 전략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 전했다. 예금에 치중한 보수적인 경영전략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얘기다.
또 일본의 대형 은행이 글로벌 플레이어와 상대하기 위해서는 해외 자본투입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견해도 있다. 노부아키 구루마타니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 상무는 "앞으로 바젤3 등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 유럽계 금융기관에서 자산을 매각하려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며 "어떻게 싸게 구입하느냐가 관건이므로 자본 투입시기를 잘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플레이어로 나서야" 한목소리=일본인들은 낮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예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은행들이 대출금을 초과해 확보하고 있는 예금보유량만 20조엔이 이른다.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서 20조엔은 대단한 파워를 가질 수 있는 만큼 일본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이를 어떻게 글로벌화에 활용할지가 관건인 셈이다.
노부아키 SMBC 상무는 "일본이 수출주도국이지만 현금보유량이 많기 때문에 엔화가치 상승이 해외사업전략을 짜는 데 유리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교훈 삼아 현지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980년대 든든한 유동성(예금)과 최고수준의 신용등급(프리플A)을 바탕으로 미국 록펠러센터 등 빅(big) 쇼핑에 나섰다가 국제적 신뢰만 잃고 철수했기 때문이다. 해외 경기가 좋으면 나섰다가 경기가 나쁘면 발을 자주 빼 일본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일부 대형 금융기관은 현지화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예컨대 예전에는 지점을 설립할 때 일본 본사 직원을 보내 현지직원을 교육시키는 데 치중했지만 이제는 현지 직원을 지점장으로 채용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또 지점보다는 현지법인 형태로 해외 진출에 나서는 은행도 있다. 히데유키 미즈호코퍼레이트은행 상무는 "이제는 일본 금융기관이 해외에 나가면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발을 빼지 않겠다는 각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엔고 앞세운 해외 진출 통할까=보수적인 일본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서바이벌 게임에 나선 것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유럽발 재정위기로 미국ㆍ유럽계 금융회사들이 휘청일 때 버블 붕괴 이후 내실을 다져왔던 일본 은행들이 지난해부터 서서히 부각을 나타냈다.
실제로 일본 최대 메가뱅크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은 영국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프로젝트 금융 부문을 인수했다. 인수 금액만 5,000억엔에 이르는 빅딜이었다. 또 미쓰이스미토모파이낸셜그룹은 미국에서 투자은행 업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ㆍ유럽ㆍ중동 부문을 인수한 노무라증권도 지난해부터 북미 지점을 늘리고 현지 채용인력도 확대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예컨대 노무라증권이 리먼브러더스의 인력을 샀지만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엔진을 가져왔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미국ㆍ유럽계 경쟁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바꿔야 할 보수적인 경영체질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