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이제 국격을 높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 없이는 선진국 못돼

<3>'하류' 지도층이 품격 낮춘다<br>땅 투기·세금포탈·주가조작 등 지도층 일탈행위 심각<br>정당·기업등 거의 모든 분야 청렴도 국제평균 밑돌아<br>물질 중심'하류문화' 일상 생활에까지 퍼져 더 문제


#장면1. 이명박 정권의 초대 환경부 장관으로 내정됐던 박은경씨. 내정된 뒤 여론검증 절차에서 경기 김포의 절대농지 투기 의혹이 제기됐고 급기야 당시 박 내정자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변명했다. 박 내정자의 이 같은 발언은 인터넷에서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첫 내각을 '강부자 내각'으로 규정짓게 하는 빌미가 됐다. #장면2. 최근 국내 굴지의 L그룹과 D그룹 오너 일가 3~4세들의 주가조작이 적발됐다. 이들은 투자지분 참여 인수 등의 정보를 흘려 시세차익을 올린 뒤 빠지는 수법을 썼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이들 외에 10여건의 주가조작 사건 자료를 검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재벌 3~4세들의 주가조작 사건의 파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면3. 지난 2005년 대규모 취업비리와 노조 공금횡령으로 노조간부 구속이라는 사태를 겪었던 부산항만노조의 경우 최근에도 취업비리 혐의로 40여명이 경찰에 입건됐다. 또 2005년 당시 사건 당사자들이 대거 노조 요직에 복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사회 각 분야 지도층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 최근 사례들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사회지도층'의 일탈행위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정치권ㆍ관료는 물론 재계ㆍ종교계ㆍ교육계ㆍ노동계 등의 지도층 관련 비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해 말 발표한 분야별 청렴도에서 한국은 정당, 의회, 기업, 경찰ㆍ사법, 언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제 평균보다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종교의 청렴도 역시 국제 평균보다 점수가 낮았으며 시민단체는 국제 평균과 동점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개인적인 차원이나 집단의 문제를 넘어 단기간에 전세계를 경악시킬 정도로 급성장하면서 물질과 정신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도대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누가 만들었나"=한 정부부처의 관료는 지난해 국회의원ㆍ공기업 관계자 등과 가진 모임에서 "도대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사회 지도층을 뭘 하면 꼭 걸고 넘어지는데 이런 시각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한 참석자의 발언에 자리를 같이 한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의를 표하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고 전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부하거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자발적으로 앞장선 사례들에서 유래됐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가 천년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같은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역대 정권마다 권력과 연계된 '게이트'나 스캔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전두환 정부는 장영자ㆍ이철희 부부 스캔들부터 ▦명성 사건 ▦전두환 비자금 사건 등이 터지면서 도덕성에 타격을 받았다. 노태우 정부는 ▦수서비리 사건 ▦율곡비리 사건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얼룩졌다.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 때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보비리 사건부터 ▦김현철 게이트 ▦린다 김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여야 정권을 교체했던 김대중 정부 시절이라고 달랐을까. 정권 출범 직후 옷로비 사건을 시작으로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최규선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노무현 정부 역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 비호 스캔들 등에 휘말렸다. 출범 5개월을 갓 지난 이명박 정부 역시 대통령부인 사촌언니의 30억원 수수 공천장사로 떠들썩하다. ◇"하류 지도층 때문에 한국은 선진국 못된다"='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1997)' '한국이 그래도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는 8가지 이유(1998)'와 같은 선정적인 제목의 책을 집필해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한국 체류 일본인 모모세 다다시씨. 그는 최근 10년 만에 한국의 현실을 꼬집는 '여러분 참 답답하시죠?'라는 책을 냈다. 모모세씨는 이번에 한국이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10가지를 지적했다. 모모세씨는 한국이 선진국이 못 되는 이유는 '돈'이 아니라 '사회적 소양(품격)'이라고 말한다. 그는 "도시에 멋들어진 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근사한 자동차가 거리를 쌩쌩 누벼도 교통법규가 엉망이고 거리가 불법주차로 가득 차 있다면 그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모모세씨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나라 ▦깨끗하고 공정한 룰이 없는 나라 ▦'빨리빨리' '대충대충' 문화가 판치는 나라 ▦커뮤니케이션 기술력은 일류, 소통능력은 삼류인 나라 ▦'나 혼자만 잘 살면 그만'인 나라 ▦자기 일에 프로의식이 없는 나라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라고 말로만 외치는 나라 ▦'졸부'식 소비가 판치는 나라 ▦'우물 안 개구리'식 생각을 하는 나라 ▦미래 구상에 '환경'이 없는 나라 등 10가지를 선진국이 못 되는 이유로 제시했다. ◇사회 전반에 퍼진 '하류 지도층' 문화=문제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지도층의 하류문화가 일상생활 전반에까지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자가 만난 김형태(가명ㆍ45)씨는 하도급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독일 BMW의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최근 건설업 침체 등으로 회사 사정이 넉넉지 않아 차 유지비가 부담되지만 차를 바꿀 의향은 없다. 김 사장은 "솔직히 건설현장 등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지프형 차량이 훨씬 실속 있고 맞다"면서도 "하지만 사장이 지프를 타고 다니면 수주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금융기관 이용부터 호텔 등에서까지 대우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답답한 노릇"이라면서도 "사회의 문화가 그런데 어쩌겠냐"고 했다. 또 최근 초등학교에서는 부모님 직업은 물론 할아버지 직업을 묻는 풍토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 직업이 무엇이냐가 졸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8년째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김지영(가명ㆍ32)씨는 "부모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학생들의 의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다"면서 "지나치게 물질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공동기획 : 현대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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