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법원 "부정행위 없는 세금 탈루만으론 처벌 못해"

'2200억대 세금포탈' 권혁 회장 항소심서 집행유예

차명계좌 이용엔 유죄 선고

2,200억원대의 세금 포탈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선박왕 권혁(64) 시도그룹 회장이 항소심 재판에서 대부분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고 형을 대폭 감형받았다. 권 회장이 해외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등 세금 납부를 피하려 한 행위 자체는 인정되지만 사기 등 부정행위가 없는 한 이를 범죄로 보고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서울고법 형사4부(문용선 부장판사)는 21일 권 회장에 징역 4년과 벌금 2,340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권 회장은 사실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으면서도 조세회피처 중 한 곳인 홍콩에 거주하는 것처럼 꾸며 시도홀딩 등의 배당 가능 유보소득 등에 대한 국내 종합소득세와 법인세 등 2,200억여원을 포탈한 혐의로 2011년 10월 불구속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권 회장이 종합소득세 1,672억원, 법인세 582억원을 탈루한 것으로 판단해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소득세 2억4,000만여원에 대한 포탈죄를 제외한 나머지 세금 탈루 행위에 대해서는 죄를 묻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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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피고인 권혁의 주민등록지나 국내 자산 보유현황, 국내에서의 직업·경제·사회활동 등을 비춰볼 때 피고인은 국내 거주자에 해당하고 시도카캐리어서비스(CCCS) 법인 역시 실질적 관리장소가 국내에 있는 내국법인에 해당하므로 납세 의무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권 회장의 행동이 납세 의무를 저버린 책임을 넘어 형사 처벌을 받을 정도로 중대한 부정행위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보였다.

재판부는 "납세의무자의 조세회피 행위가 있으면 그걸 막거나 과세를 하면 된다"며 "형사 처벌을 하기 위해서는 납세의무를 피하는 회피 행위를 넘어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혐의와 관련해 피고인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CCCS의 법인세 포탈 행위에 대해서도 "해운업계에서 편의 등을 위해 다수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행위 자체는 위법한 것이 아니고 이 행위의 주된 목적이 조세 포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며 "법인세 납부 의무는 인정되지만 적극적 부정행위로 세금을 포탈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시도홀딩·시도탱커홀딩 법인의 배당 가능 유보소득을 권 회장이 배당받은 것으로 간주해 매긴 소득세와 조선회사로부터 받은 커미션 등에 대한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포탈 혐의에 대해서도 "이 소득이 피고인에 귀속됐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권 회장이 타인 명의의 해외계좌를 이용해 자신이 받은 커미션이나 배당소득을 은닉해 2억4,000만여원의 소득세를 포탈하고 이를 자녀의 생활비나 자신의 주식 취득 자금 등으로 사용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다.

권 회장을 변호한 법무법인 바른의 이원일 변호사는 선고 직후 "법률상 조세포탈죄 구성과 관련해 재판부가 전향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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