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외교 술수가 점입가경이다. 일본 정부는 20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중의원에 검증결과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그 내용 자체가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고노 담화)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특히 담화문 작성 당시 일본 정부 관계자와 한국 당국자가 사전 조율을 통해 문안을 조정했다는 내용을 포함시킴으로써 고노 담화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마치 양국 정부 간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양 여론을 오도하려는 의도가 농후하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과거 잘못과 반성을 어떻게든 희석해보겠다는 꼼수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보고서에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사실상 끝냈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 1993년 8월 발표된 고노 담화에서 일본은 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위안소의 설치·관리, 위안부 이송에 관해서는 일본군이 관여했고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진심으로 올린다"는 것이 고노 장관의 발언이었다. 아베 신조 총리도 올해 3월14일 "고노·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아베의 이 발언 역시 정치적 계산이 들어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아베는 이미 2012년 8월 "재집권하면 고노·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고 올해 2월에는 "(위안부 피해자 조사 내용에 관해) 학술적 관점에서 더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관방장관에게 지시까지 했다. 과거사의 은폐·왜곡을 통한 고노 담화 훼손이 태평양전쟁 당시의 식민지배에 대한 공식 사죄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의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은 일본 스스로 인정한 역사적 진실일 뿐 아니라 유엔 인권 메커니즘과 각종 협약 등을 통해 누차 확인된 역사의 진실이다. 특히 전쟁 중 여성에 대해 자행된 성폭력은 국제사회가 공분하는 반인륜적 범죄다. 역사적 진실과 인류로서의 양심을 동시에 저버리는 일본 정부의 기도(企圖)는 어차피 성공하기 어렵다. 북핵 문제 등으로 한미일 공조가 중요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한국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고노 담화 무력화'를 기도하고 나선 것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선조가 저지른 부끄러운 침략의 과거를 청산하고 후손에게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물려주는 것이 지금의 일본인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다.